몰라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멜버른여행⑥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호주 남부 빅토리아주의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12사도 바위, 로크아드 협곡, 레이저백 등 포트켐벨 공원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된 여행지이다. 600리 그레이트 오션로드(GOR) 중 한 구간이다.

호주 버킷리스트 그레이트 오션로드② [함영훈의 멋·맛·쉼]
그레이트 오션로드 전망대
호주 버킷리스트 그레이트 오션로드② [함영훈의 멋·맛·쉼]
12사도 일대 색다른 앵글 (북서에서 남동으로 촬영)

마을 주민들은 이 해안 절벽 앞 거대 바위섬 여러 개가 귀엽다고 여겨 9명의 돼지가족(Sow & Piglets)이라 불렀지만, 이 풍경의 감동이 참으로 크고 경외심이 들기에 ‘성인 12사도(Apostles)’라 통칭하는데 모두 동의한다.

파도의 침식이 빚어낸 '12사도'…웅장한 풍경에 '경외감'

애초부터 12개가 아닌 9개 바위섬이었다. 1990년대~2000년대 15년 사이에 침식과 풍화로 2개가 사라져 지금은 7개이다. 서둘러 꼭 가봐야 할 이유가 되고 있다.

이 일대는 해안가 평야 지대가 파도에 끊임없이 침식되면서 70~80m 높이 해안 절벽이 그레이트 오션로드 종점인 워넘불(Warrnambool)과 고래 관측소(Logans Beach Whale Watching Platform)까지 60㎞나 이어져 있다. 이중 국립공원 구역은 프린스타운에서 피터버러(Peterborough)까지 30㎞이다. 물론, 이곳을 도착하기 전 빠삐용 절벽 닮은 케이프 패튼 전망대부터, 해식애 라인은 연천-포천-철원 주상절리 절벽지대 모양새로, 군데군데 이어져 있었다.

호주 버킷리스트 그레이트 오션로드② [함영훈의 멋·맛·쉼]
12사도 북서쪽 지역

강한 곳은 침식을 버텨내며 바다 방향으로 튀어나오고, 약한 곳은 만(Bay) 모양으로 깎여 쑥 들어간 모습이다. 캠벨 마을 또한 아름다워, 한 신부가 꼭 가자고 졸라 신랑이 소원을 들어줬는데, 그녀는 가이드에게만 결혼 전 다른 남자친구와 와서 너무 좋았던 곳이라는 회고담을 털어놓았고, 신랑은 2023년 3월, 이 가을에도, 그때 신부가 왜 거길 가자고 그토록 졸랐는지 모른다는 어느 일화가 흥미롭다.

현지인들은 12사도가 1000만~2000만 년 전부터 남극해에서 웅장하게 솟아 오른 바위라고 한다. 솟아 오른 것은 아마도 육지인데, 파도에 살아난 것만 우리 눈앞에 웅장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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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 않아 12사도 처럼 바뀔지도 모를, 파도와의 밀당이 복잡한 지형을 만든 곳(12사도 북서쪽)

제주·울릉 지형에서 보듯, 풍화 침식은 동굴을 아치다리로 만들고, 이마저 끊어지면 망부석처럼 된다. 해식애-해식동굴-육지 분리 교량형 형성-동굴 가운데 분리-단독 뾰족 바위섬 형성 등 과정을 거쳤으리라.

3㎞ 해안절벽 앞에 군데 군데 서 있는 45m 높이의 12사도 바위섬 서쪽에는 이같은 풍화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해식애 2개-교각 3개로 형성됐던 런던브릿지는 30년 전 해식애 1개 교각 2개로 육지와 분리됐다. 레이저백(The Razorback)도 수 백년 뒤엔 제2의 12사도가 될지도 모르겠다.

헬기에서 보는 12사도의 석양은 ‘환상적’

호주 버킷리스트 그레이트 오션로드② [함영훈의 멋·맛·쉼]
12사도 일대 헬기 투어 출발! 헬기 아래로 목장의 양들이 보인다.

전망대는 늘 북적인다. 인증샷 찍기 경쟁엔 동서고금 남녀노소가 없다. 선명하게 찍히는 사진은 어디에도 없다. 남극에서 몰려온 파도가 이들 거인과 부딪치며 늘 미스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비교적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은 헬기 투어다. 헬기에서의 시야는 파도의 포말과 미스트를 짙푸른 바다색에 섞어버리는 효과가 내니, 사도들의 키는 좀 작아 보여도 선명하다. 남동에서 출발한 헬기는 북서쪽 20km가량 날아갔다가 되돌아온다.

헬기 사업주는 리처드이다. 재벌 2세이다. 1세는 이 일대에서 양 목장을 하면서 거금을 벌었고, 2세에게 시드머니를 내줘서 헬기를 띄웠다. 최근 또 하나의 헬기 회사가 생기자, 리처드의 엄마는 프로모션 경쟁을 하기보다는 아예 신생사를 매입해 버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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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사도 남동쪽 내륙은 목장지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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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사도 풍경. 원래 9개 바위섬이었다가 침식으로 7개가 남았다. (남동에서 북서로 촬영)

이곳의 석양은 감동의 절정이다. 홍화금동사도상(紅化金銅司徒像)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돈 좀 더 내는 선셋 투어가 따로 있다. 깁슨스 스텝스(Gibson Steps)이라는 계단을 따라 바닷가로 내려가 거대 사도상을 가까이서 보는 것도 색다른 감흥을 준다.

안내문을 보니 12사도 일대엔 일반적인 수중 생물 외에 초대형 갑오징어, 배불뚝이 해마 등 남호주에만 서식하는 생물이 산다고 한다.

레이저백·십렉 워크·로크 아드도 웅장

호주 버킷리스트 그레이트 오션로드② [함영훈의 멋·맛·쉼]
“우린 왜 12사도에 못 끼는 거야?” 12사도 바위섬 7개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레이저백 인근 바위섬
호주 버킷리스트 그레이트 오션로드② [함영훈의 멋·맛·쉼]
레이저백

12사도 지역에서 몇 백 미터 서쪽으로 가면 레이저백(Razorback)을 만난다. 파도로 침식된 지형이 오목과 볼록, S라인, 분리된 긴섬, 단독 바위섬 등 다채롭게 전개된 레이저백은 파도가 치면 포말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 채 스프레이처럼 이 일대에 뿌려져 외형의 날카로운 끝 부분만 마모되었다.

지층 문양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표면은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질감(smooth grooves)을 가졌다. 파도는 밑둥을 때려 푸켓의 007바위처럼 점차 변해가고 있다. 이곳 주변 낮은 나무 숲에서 놀던 고슴도치가 사람을 만나도 피하지도 않고 수줍은 듯 고개만 숙이고 있었는데, 글로벌 여성 여행객들의 사진 세례를 받아서 그런 모양이다.

그 옆 반원형 오목한 해식 절벽 안에 쏙 들어가 있는 두 개의 아키웨이 바위 섬도 파도 미스트를 많이 맞아서인지 머리 쪽만 동글동글하다.

호주 버킷리스트 그레이트 오션로드② [함영훈의 멋·맛·쉼]
십렉워크를 따라 내려가면 로크 아드 협곡 속에 쏙 들어갈수 있다.

높은 해식애 위에 있다가 해변으로 내려가는 십렉 워크(Shipwreck Walk)는 로크 아드 협곡(Loch Ard Gorge) 주변에 있다. 거센 파도가 치고 복잡한 지형 때문에 안개가 자주끼는 지역인데, 아주 드물게, 예상 밖 큰 파도 갑자기 들이닥치면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태양이 떠있거나 바람이 세지 않고 파도가 높지 않으면 안전하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해안가 수간모옥 같은 곳에 스스로 갇혀보면, 나만의 천국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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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와 토미 두 소녀,소년이 난파선에서 가까스로 살아나 하룻밤을 보낸 로크아드 주상절리 동굴

‘로크 아드’라는 지명은 난파선 배 이름에서 유래됐다. 1878년 3월2일 로크 아드(Loch Ard)호는 이곳에서 난파당해 배에 타고 있던 54명중 18세 귀족 소녀 에바와 16세 평민 소년 토미만 살아남는다. 둘은 주상절리가 드리워진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낸뒤 구조된다.

에바는 귀국길에 올랐고, 토미는 빅토리아주에 잔류한다. 많은 사람들이 “둘이 결혼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아쉬워 하지만, 도슨트는 “미성년자 답게 있다가 헤어졌다”고 팩트를 전했다. 주변을 도보여행 하다보면 블로우홀, 석회암 더미, 짧은 꼬리 가위새의 비상 등 다채로운 풍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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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 붙었다가 떨어진 런던브릿지

육지에 붙었다가 떨어진 다리 모양의 바위섬 런던 브릿지(London Bridge)의 작명에는 고향 영국에 대한 향수가 배어있다. 1990년대 육지에서 분리되면서 영국인 아닌 호주인이라는 존재론적 아이덴티티를 재확인했을지도 모르겠다.

걷기 여행코스 그레이트 오션워크도 있다. 아폴로 베이에서 12사도 바위까지 이어지는 약 104㎞의 해안 트레일 코스는 전부 다 걸어도 되고, 난이도에 따라 구간 별로 선택해도 좋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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