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러·놈·호먼 등 ‘불법 이민 강경파’ 지명
더힐 “美 시민권 취득한 이민자도 추방 대상 될 수”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규모 불법 이민자 추방을 공약한 가운데, 시민권이 없는 불법 이민자는 물론이고 귀화를 통해 시민권을 얻은 이민자까지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민자들이 미국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며 최소 1500만명의 이민자를 내쫓겠다고 공약했다. 운송이나 재정 측면에서 이를 실현하긴 힘들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트럼프 당선인이 이민자 추방에 힘을 쏟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규모는 작지만 잠재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가지 계획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민자를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18일(현지시간)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2기 행정부의 백악관 정책 담당 부비서실장으로 불법 이민 강경파인 스티븐 밀러 전 백악관 선임 보좌관을 지명했다. 국토안보부 장관에는 크리스티 놈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를 낙점했고, 국경 문제를 총괄하는 ‘국경 차르’로는 톰 호먼 전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을 발탁했다. 국경 문제와 관련된 주요 직책에 이민자 추방 강경파 3인을 세운 것이다.
특히 밀러는 영향력이 크고 무자비할 가능성이 높다고 더힐은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의 뉴욕 매디슨 퀘어가든 유세 현장에서 “미국은 미국인만을 위한 것”이라고 외쳤다. 또한 대선 전 인터뷰에서 주 방위군, 주 및 지역 경찰, 마약단속국(DEA), 주류·담배·총기국(BATF), 심지어 미 군대까지 동원해 불법 이민자들을 모으고 추방될 때까지 텐트 캠프에 구금하는 광범위한 계획을 설명했다.
밀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귀화 신청에 대한 사기 혐의를 제기하며 수년에서 수십 년 동안 미국 시민으로 지내 온 사람들을 추적해 ‘시민권 박탈(denaturalization)’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따라서 시민권을 획득한 합법 이민자들도 안전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시민권을 박탈 당한 이민자는 밀러의 다른 표적과 함께 추방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든 불일치나 모순이 사기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 합법적인 시민이나 혼동으로 사소한 실수를 한 사람들도 과도한 조사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귀화 무효화 절차는 1906년 법령으로 제정됐으며 허위 진술이나 사기 누락을 통해 시민권을 취득한 경우 시민권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절차는 20세기에 일관성 있게 사용되지 않았는데, 세계 대전과 냉전 시기에는 활발하게 이뤄졌고, 덜 불안한 시기에는 빈도가 훨씬 낮았다.
21세기 초에는 비자 및 시민권 신청 시 자신의 배경을 숨겼으며 테러리스트, 전범, 인권 침해자로 기소된 사람들이 주로 시민권 박탈의 대상이 됐다. 예를 들어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이스라엘에서 두 명의 대학생을 살해한 슈퍼마켓 폭탄 테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라스메아 오데에 대한 시민권 박탈 사례가 있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미 법무부는 사기, 허위 진술 또는 속임수로 귀화한 것으로 의심되는 수천 명 이민자의 시민권을 조사하는 ‘재검토 작전(Operation Second Look)’이라는 시민권 박탈 계획을 수립했다.
재검토 작전은 많은 신규 요원을 고용해 처음에는 실제 시민권 박탈 건수를 3배 이상 늘리고, 더 많은 박탈을 약속했다. 민주당 행정부는 “끔찍한 일을 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주목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거나 잘못으로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들”을 쫓을 태세를 보였다.
2017년 연방 대법원은 애초에 귀화를 불가능하게 할 거짓말이나 고의적인 누락을 의미하는 “중대한” 허위 진술에 대해서만 귀화를 취소할 수 있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하면서 정부의 시민권 취소 권한을 제한했다.
그러나 ‘중대성’은 보는 사람에 눈에 달려 있다고 더힐은 짚었다. 2025년에 ‘터보차지된’ 재검토 작전을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한 밀러의 경우 추방의 전초전으로 가능한 한 많은 이민자의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는 의도에 부합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밀러의 강박적인 시민권 박탈 캠페인은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옳든 그르든 시민권이 박탈되거나 취소된 이민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귀화 무효화 소송에서 승리한 사람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다.
저널리스트 M. 게센은 무효화된 귀화 신청을 광범위하게 추적하면 “영속성에 대한 가정을 빼앗아” 수백만 명의 귀화 시민을 이류 시민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나쁜 것은 부모의 신청을 통해 미성년자 상태로 귀화한 수천 명의 이민자들이 자신의 잘못 없이 시민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 최악은 불법 이민자의 자녀에 대한 출생 시민권을 폐지하겠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을 고려할 때, 많은 미국 태생 어린이들이 부모가 시민권을 박탈 당할 경우 시민권을 보장 받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더힐은 전했다.
다행히도 시민권 박탈은 연방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법 절차이다. 그러나 이 소송에서는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모든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드는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변호사 비용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실수나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인해 시민권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힐은 “이는 밀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