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가치 타고 ‘착한 소비’ 상징으로

전시회 기념 한정판 순식간에 품절도

오래 쓸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 더해

쉽게 버려진다면 되레 환경의 독

당신이 든 에코백, 정말 ECO한가요
자원 순환을 고민하며 탄생한 안야 힌드마치의 ‘나는 비닐가방이다(I Am A Plastic Bag)’프로젝트. [안야 힌드마치 홈페이지]

#30대 직장인 A씨는 늘 에코백(Eco bag)을 들고 출근한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꽉 막혔던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자 파리에 갔다가 그곳 미술관에서 구매한 것이다. 가볍고 편한데다 ‘내가 그곳에 다녀왔다’는 증명이기도 하기에, 몇 만원짜리 에코백이 수 백만원짜리 명품백보다 훨씬 마음에 든다.

샤넬백 만큼 에코백이 각광받는 시대다. 경험을 중시하는 트렌드와 함께 ‘착한 소비’가 대세를 이루면서 ‘의식 있는’ 패션에 대한 추종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환경을 생각해서 사용하는 에코백이 실제로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될 수도 있다. 수 백 번 재사용하지 않는다면.

2007년 영국의 디자이너 아냐 힌드마치(Anya Hindmarch)는 흰색 천 가방에 ‘나는 비닐가방이 아니다(I’m Not A Plastic Bag)’는 메시지를 새겨 영국과 일본에서 한정 판매했다. 수 백만원짜리 명품가방을 디자인하던 패션디자이너가 한정판으로 제작한 이 토트백의 가격은 단돈 5파운드(한화 7600원). 가방에 적힌 대로 비닐이나 종이, 합성섬유가 아닌 오로지 천으로만 제작했다.

공개와 동시에 30분 만에 2만장이 완판된 이 한정판 토트백은 곧 할리우드 스타들의 애용품으로서 파파라치 컷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유명세를 탔다. 환경 캠페인으로도 실질적인 효과도 있었다. 영국 소매 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7년 기준 110억장에 이르렀던 영국 내 비닐봉지 소비량이 2010년에는 절반 수준인 61억장으로 줄었다. 제품에 담긴 의미를 담아 이와 같은 토드백은 ‘에코백’이라고 불렸고, 이후 생로랑, 마크제이콥스 등 디자이너 브랜드도 에코백을 출시했다.

사전적으로 에코백은 ‘인조 피혁과 화학 처리 등 가공을 하지 않고 천연 면이나 옥스포드, 컨버스 천 등 생분해성 재료로 제작되는 친환경 천 가방’을 말한다. 혹은 재활용 옷감이나, 남는 자투리 천을 누벼 버려지는 자원을 아끼고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든 가방을 통칭하기도 한다. 유명 브랜드들은 매 시즌 에코백 출시를 통해 자신들도 친환경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명품 브랜드가 뛰어들기 전부터 에코백은 전시나 공연의 필수 굿즈(Goods)이기도 했다. 미술관이나 공연기획사에서 행사를 기념하는 의미로 한정판으로 제작하는 것. 행사와 함께 제작되기에 기록의 의미도 있다.

당신이 든 에코백, 정말 ECO한가요
이중섭의 은지화에서 모티브를 따서 제작한 이건희컬렉션전 기념 에코백(위)과 이건희컬렉션전 한국미술명작전 기념 에코백. [MMCA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주요 전시 에코백은 품절사태를 빚기도 한다. 이건희 컬렉션전은 지금까지 열린 3편 전시 기념 에코백이 1000개 넘게 판매, 품절됐다. ‘한국미술명작전’은 근대미술과 어울리는 린넨소재, ‘이중섭전’은 은지화와 어울리는 친환경 타이벡 소재, ‘모네와 피카소전’은 페브릭에 프랑스 파리풍의 파스텔 투톤으로 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에코백) 디자인 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전시의 특성을 잘 살리는 것과 환경 친화적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체명이 적힌 에코백은 일종의 광고 효과를 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술계의 올림픽’으로 꼽히는 베니스 비엔날레다. 이 곳에선 관객들이 가방을 메고 전시장은 물론, 베니스 전체를 걸어다닌다. 에코백에 적힌 단체 및 전시명이 자연스럽게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에 비엔날레에 참여한 각국 파빌리온(전시장 내 임시 건물)들은 에코백 제작에 신경을 쓴다. 디자이너 혹은 작가와 컬래버를 하기도 하고, 가방 1개마다 일정 금액을 기부하는 등 특별한 의미를 담기도 한다.

친환경적이면서 가격도 저렴한, 가치 소비의 상징인 에코백이라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에코(Eco)스럽지 않다. 여러 번 쓰지 않으면 패스트패션으로 전락해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일부 연구에선 비닐봉지보다도 나쁘다고 지적한다.

영국 환경청이 지난 2011년 발표한 ‘수명 주기 평가’에 따르면 비닐봉지(HDPE), 종이, 면재질 에코백의 순서로 친환경적이다. 단순히 제품이 소비되고 버려지고 썩는 과정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생산시부터 발생하는 탄소의 양, 자원의 양부터 고려한 분석이다. 언뜻 결과만 놓고 보면 일반의 상식과 반대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유는 이렇다. 석유에서 비닐을 뽑아내는 것보다 목화를 재배해서 가공하는 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고, 더 많은 탄소가 발생한다. 병충해를 막기 위해 뿌리는 농약과 살충제는 덤이다. 종이봉투는 3번 이상 사용해야 비닐봉지 보다 환경보호 효과가 있고, 에코백은 131번 재사용되야 비닐보다 친환경적이다.

비슷한 연구결과는 또 있다. 2018년 덴마크 환경 및 식품부는 지구 온난화를 줄이기 위해선 비닐봉지는 최소 37번, 에코백은 7100번 사용한 뒤 버려져야 제작시 발생한 오염을 회복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에코백이 본래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선 ‘마르고 닳도록’ 사용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환경에 가장 독이 되는 것으로 ‘패스트패션’을 꼽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에코백의 시초 ‘나는 비닐가방이 아니다(I’m Not A Plastic Bag)‘가 나온 후 15년이 지난 지금, 이 천소재의 토드백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캔버스 천에서 시작해 버려진 옷이나 텐트, 자동차 시트, 한지까지 활용하며 소재가 다양해졌다.

심지어 플라스틱에서 뽑아낸 특수 섬유를 활용한 제품도 나온다. 아냐 힌드마치는 지난 2020년부터 폐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나는 비닐가방이다(I Am A Plastic Bag)’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5년 전 자신이 만든 가방에 세긴 메시지와 정반대의 의미를 프로젝트에 담았지만, 사실 맥락은 같다.

힌드마치는 재활용 페트(PET)병에서 섬유를 추출해 새로운 직물을 만들고, 이것으로 토트백, 핸드백, 악세서리 등을 제작했다. 가방 1개당 사용하는 재활용 페트는 500㎜ 기준 32개다. 가격은 파격적으로 저렴했던 지난 번과 달리 600~1200파운드로, 다소 고가(高價)다. 힌드마치는 “2007년 ‘나는 비닐가방이 아니다’는 프로젝트로 대대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근본적 문제 해결은 되지 않았다”며 “알리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자원의 순환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진정한 의미의 에코백은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는 태도에 있다. 단순히 천이나 재활용 소재의 가방이 아니라 물건의 탄생과 소비, 버려지고 폐기되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사이클로 보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려는 치열한 고민, 그리고 이를 생활에서 실천하는 삶의 태도까지 망라한다. 쓰고 또 쓰는 것 만큼 ‘에코’한 소비는 없다. 하나를 사더라도 오래 쓸 것. ‘에코백의 역설’이 주는 교훈이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