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인터뷰
[헤럴드경제=대담 정태일 재계팀장·정리 문영규 기자] “우리나라 규제는 최고 수준입니다. 규제가 많아 행정법 학자들도 행정법이 몇 개인지 모를 겁니다. 규제를 줄이고 의원입법에도 규제영향평가제가 필요합니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상의) 상근부회장이 국내 경제의 역동적인 성장과 기업환경 개선을 위해 규제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0여 년 간 경제 관료로 규제를 다뤄온 만큼 어느 누구보다 규제의 필요성을 알고 있지만 동시에 효율적인 규제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피부로 느껴왔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정부 들어 규제개선이 국정 운영 핵심 기조로 자리잡은 가운데, 기업 목소리를 대변하며 민관 합동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상의의 상근부회장으로서 ‘규제혁신’은 현장에서 절실히 체감했던 개선 과제였다.
규제개혁, 의원입법 평가 필요…
우태희 상근부회장은 최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나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규제를 모아놓고 있다”며 “규제엔 그 나라 역사와 배경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높은 수준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 부회장은 1984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해 이후 30여 년 간 경제·통상 분야에 몸담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까지 지내며 직접 관련 규제를 집행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일들을 해왔다.
기업활동에 어려움을 주는 규제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을 사례로 든 그는 “미국과 일본은 신규물질만 대상으로 규제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신규물질과 기존물질 모두를 규제해 관리하는 물질수만 1000개가 넘는다” “이는 화학사업을 하기엔 어려운 수준”이라고 말했다.
화평법과 화관법은 화학물질 유해성 정보를 환경부에 등록하는 것이 핵심인데, 유럽의 규제를 여과 없이 도입해 기업은 규제 부담이 가중되고 신제품 개발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정부는 지난 8월 제1회 규제혁신전략회의를 통해 과도하고 불합리한 환경 규제를 혁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법령의 숫자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 우 부회장은 의원입법의 남발도 큰 문제라고 지적하며 의원 입법에도 규제영향평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를 비롯한 각계는 상대적으로 입법 과정에 규제 영향 평가 절차가 없는 의원입법 비율이 크게 증가하며 불완전한 규제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하고 있다.
우 부회장은 “과거 행정입법이 70%였고 의원입법이 30%였는데 최근 한 조사에선 의원입법이 89%였고 정부입법이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규제는 비용보다 편익이 높을 때 도입해야 하는데 정부입법은 그나마 규제영향평가를 통해 평가하고 있지만 의원입법은 이같은 절차가 없다”며 “정부입법에서 관계부처 간 이견이 많고 국무회의에서 논의가 생기면 바로 의원입법으로 가는 청탁입법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의원입법에도 국회입법조사처 등을 통한 규제영향평가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각 부처 ‘바텀업’ 개선 유도해야
윤석열 정부에서 규제개혁의 속도감이 나지 않는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빠르게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이뤄낼 수 있도록 정부 각 부처가 직접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우 부회장은 “각 부처가 규제를 담당하는데 부처는 대통령실, 총리실이 너무 빨리 움직여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톱다운(하향식)만 되고 바텀업(상향식)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연말께 대통령을 중심으로 ‘규제혁신성과보고대회’ 등을 연다면 각 부처가 풍부한 혁신안을 가져올 수 있고 부처 주도에 의한 규제혁신이 이뤄지면 더욱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경제 규제 혁신과제 24건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1조5000억원 이상의 기업 투자가 집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우 부회장은 “역대 정부가 출범 초기 규제개혁을 추진해왔는데 새 정부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아직 성과를 기대하긴 이르지만 투자가 이뤄질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감사하다”고 전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인프라 투자로 유도…
재계가 해소해야 할 규제 중 하나로 중대재해처벌법이 꼽힌다. 지난 1월 시행 이후 업계는 줄곧 의무내용의 불확실성, 과도한 처벌수위 등에 대해 개선을 요청하고 있지만 법, 시행령 개정 등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태희 부회장은 “통계로도 나왔지만 불행하게도 법 시행 이후 (중대재해)사망자 수가 줄고 있진 않아 안타깝다”며 “중대재해예방이라는 입법취지에 맞게 처벌중심이 아닌 예방중심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업계에선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성에 대비하기 위해 컨설팅 수요도 증가하는 추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컨설팅 수요가 늘면서 적지 않은 고용노동부 출신 은퇴자들이 법무법인으로 가고 있다”면서 “기업이 지불하는 높은 수준의 로펌 컨설팅 수임료 대신 현장 재해방지에 투자를 확대하는 쪽으로 길을 터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도한 법 때문에 기업의 안전투자 재원이 방어적 수단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각에선 사망 건수가 줄지 않으니 법을 강화하자고 하는데 아마 컨설팅 비용만 늘어날 것”이라며 “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인프라 투자이고 안전투자를 해서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지 컨설팅으로 해결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전교육, 로봇 도입, 장비 보강 등 사고를 줄일 수 있는 투자가 기업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안전이라고 전했다.
한국경제 “청룡열차 내리막”…美 규제영향, 정부가 균형 잘 찾아야
경제가 ‘복합위기’ 국면으로 내몰리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수출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안보 전쟁에 기업들도 영향을 받고 있어 각국 규제에 대한 적절한 대응과 함께 ‘룰 메이킹’을 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태희 부회장은 “경제가 정말 어렵다. 지금은 청룡열차로 치면 내리막을 향하고 있다”며 “앞에 있는 대기업은 눈에 보이니 비상대응체제를 소집하고 내년 투자계획을 짜고 있고 뒤에 있는 기업들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향후 같이 느끼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금이 경기하강의 첫 단계이고 과거와 비교해 외환보유고 등 상황이 다르다고 하지만 정말 어렵다”면서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다소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다만 “어려울 때 돌파구는 항상 수출이었고 외환위기도 수출로 극복했다”면서 “기업들이 협력해 대미투자를 결정했고 기업들의 현명한 투자 덕분에 앞으로 한국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고 봤다.
우 부회장은 과거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과장을 시작으로 미국 주재 상무관, 지식경제부 통상협력국장, 산업부 통상교섭실장, 통상차관보 등을 역임하며 통상 관련 전문가로 꼽힌다.
최근 수출 둔화의 중심에는 주력 산업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희토류 등 4대 공급망 조사를 실시했는데 한국은 희토류를 제외한 3개 분야에서 주도하고 있다. 특히 현안이 되는 분야는 반도체 산업이다. 미국은 ‘반도체 및 과학법’ 입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 등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면서 중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심이 커지는 상황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한국산 전기차의 세액공제 배제 등 규제도 우리 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은 미 정부 입법 다음날 바로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를 만나 우려의 메시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우 부회장은 “중국과의 관계 유지, 미국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며 “현재 미국과는 잘 협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중국에 있는 공장들을 유지하면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팹4(4개국 반도체 협력)’ 참여 등을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반도체에 관해선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업들의 현명한 투자로 여기까지 왔고 기업들이 성공해서 국부를 늘릴 수 있도록 통상당국이나 정부에서 협상을 잘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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