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거문고 듀오 두 팀
리마이더스, 달음의 ‘네 개의 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은은한 나무향이 가득찬 달오름극장으로 네 명의 연주자가 걸어나온다. 가야금 두 대와 거문고 두 대. 각자의 자리로 찾아가 첫 곡을 연주한다. 곡의 제목은 ‘원심력’. 유려한 피아노 소리처럼 가야금이 흐르고, 그 뒤로 단단하고 속이 꽉 찬 거문고 소리가 이어진다.
한 무대에 설 일이 없던 두 팀이 만났다. “같은 편성”의 듀오이기 때문이다. 리마이더스와 달음, 두 팀은 가야금 거문고 듀오다. 달음의 하수연은 “같은 구성이다 보니 이렇게 같은 무대에 오를 일이 없었다”며 “보통 무대가 있으면 저희 둘 중 한 팀만 불렀다”고 말했다. 그랬던 두 팀의 만남은 어쩐지 운명이자 숙명처럼 다가왔다.
지난 6일 저녁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리마이더스(가야금 박지현, 거문고 김민영)와 달음(가야금 하수연, 거문고 황혜영)의 2022 여우락페스티벌 ‘네 개의 점’ 공연이 진행됐다. 이들의 무대는 두 개의 팀이면서 네 사람, 다시 하나의 팀이 되는 이상을 향해 갔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각의 팀에서 음악활동을 해온 네 사람의 모든 경험이 이 무대를 통해 만나고 어우러졌다.
첫 무대를 ‘원심력’으로 내세운 구성이 영리했다. ‘원심력’은 일종의 ‘자기소개서’였다. 리마이더스의 거문고 주자 김민영이 작곡한 이 곡은 네 명의 연주자가 각자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곡이었다. 산뜻하고 경쾌한 선율의 가야금을 연주하는 하수연(달음), 남성적인 거문고의 힘을 빼면서도 묵직한 황혜영(달음), 기존의 가야금과는 다른 음색을 들려주면서도 세 사람을 받쳐 주는 박지현(리마이더스), 강단있고 야무진 베이스의 거문고를 들려준 김민영(리마이더스)의 연주가 어우러졌다. 네 가지 색이 섞이자, 이전엔 보지 못한 빛깔이 나왔다. 새로운 음향과 음악의 파격이 첫 곡으로 안성맞춤이면서, 향후 이어질 무대에 대한 프롤로그처럼 보였다.
첫 곡 이후 팀으로서의 리마이더스, 달음의 무대가 이어졌다. 두 팀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성향 역시 완전히 반대였다. “MBTI로 치면 리마이더스 E, 달음은 I”라고 한다. 이들의 성향은 음악으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리마이더스는 변주가 많고 역동적이면서 전위적이다. 반면 달음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유려한 선율과 서정성이 강조된다. 두 팀이 함께 한 첫 곡 이후 그간 구축해온 각 팀의 음악색을 경험하니 이들의 만남은 더욱 파격적으로 다가왔다.
리마이더스와 달음은 이번 ‘네 개의 점’ 무대를 위해 다수의 신곡을 창작했다. 덕분에 이번 무대에선 그간 시도하지 않았던 가야금 이중주, 거문고 이중주는 물론 네 사람이 함께 하는 무대까지 만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여우락’ 무대이기에 가능했던 실험과 도전이 이어졌다.
김민영 황혜영 두 거문고 주자들은 거문고 이중주 ‘시그널(Signal)’을 비롯해 단체곡 ‘더 레드’, ‘시간선’에 이르기까지 전통적인 주법부터 현재 거문고 주자들이 쓰는 새로운 주법까지 모두 보여줬다. 특히 ‘더 레드’에선 온갖 주법이 등장해 기존의 거문고에서 들을 수 없는 소리의 향연이 펼쳐졌다. 두 사람이 활로 거문고를 켜기 시작하자 깊고 낮은 첼로 음색이 들려왔고, 다시 술대를 쥐고 단단한 소리로 치고 들어오는 변화가 이색적이었다.
가야금 연주자 하수연 박지현은 수많은 음을 만들어냈다. 한 곡 안에서 변화무쌍한 코드 진행을 담아내며 기존의 음악과는 다른 차원의 연주를 들려줬다. 두 사람의 가야금 이중주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스패니시 기타를 연주하는 것 같은 하수연의 테크닉 아래로 피아노의 낮은 음을 연주하는 듯한 박지현의 소리가 어우러지니 예상을 깨는 아름다움에 취하는 무대였다.
때때로 가야금, 거문고는 ‘뻔한’ 전통악기라는 선입견에 갇혀 있다. 두 악기에 대한 익숙함은 이런 선입견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 선입견이 생기는 것 역시 사실 두 악기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네 개의 점’ 무대는 익숙한 두 악기와 미처 몰랐던 두 악기의 모습을 보여줬다.
2018년 결성된 달음, 2020년 데뷔 앨범을 낸 리마이더스의 평균 나이는 29.7세. 두 팀은 이제 막 그들의 음악을 보여주기 시작해, 지난 10여년간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을 해온 선배들의 뒤를 이어가는 중이다. 전통 안에서 다양한 음악 취향과 경험을 가지고 성장한 두 팀, 네 명의 연주자는 억지로 파격을 시도하려 하거나, ‘전통의 현대화’라는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리하지도 않는다. 지금 그들의 음악이 무대가 되기에, 이후 두 팀에겐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모른다. 리마이더스와 달음의 내년, 혹은 5년, 10년 후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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