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발휘 무대·세계진출 동력
대회 준비과정이 곧 성장의 길
“저한테 콩쿠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뭔지 알아요? 정적이요. 종전 같은 고요함. (중략) 상 받고 축하파티 하고 나서 밤늦게 호텔로 돌아왔는데 적막했어요. 분명히 그날 아침까지는 이방 저방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렸는데 더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밤의 정적이 너무 강렬해서 잊히지가 않아요.”( SBS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중)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 콩쿠르인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한 스타 피아니스트 준영의 고백이다. 드라마가 그린 주인공의 감정은 상상 못할 외로움이고, 콩쿠르는 거대한 두려움과 압박이었다.
오랜 기간 음악 콩쿠르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진 않았다. 지독한 경쟁, 하루 12시간 이상 혹사에 가까운 연습 시간, 성적에 대한 강박 등 부정적 측면이 노출됐다. 그럼에도 젊은 음악가들은 꾸준히 유수의 콩쿠르 무대로 향한다. 경연 무대에 서는 감각은 모두가 다르다. 누군가에겐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많은 연주자들은 ‘도장 깨기’를 하듯 단계별로 콩쿠르의 문을 두드린다. 자칫 등수를 향한 과정으로 보일 수 있으나, 정작 음악가들은 콩쿠르를 ‘실력 발휘’와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다.
세계적인 권위의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60년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가 된 임윤찬은 시상식을 마치고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스무 살이 되는데 그 전에 내 음악이 얼마나 성숙했는지 알고 싶어 콩쿠르에 나왔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이미 열다섯 살의 나이에 윤이상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했다.
2018년 한국인 최초로 지나 바카어우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이번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출전해 레이먼드 E. 버크 심사위원상을 받은 신창용은 콩쿠르를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신창용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콩쿠르는 나이 제한이 있어 나갈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다”며 “특정 나이대에 도전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최근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참가해 우승한 양인모는 “서로를 통해 배우는 시간이 돼 콩쿠르의 매력을 다시 느끼게 됐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콩쿠르에 출전하는 MZ 세대 음악가들은 수상에 대한 강박이나 등수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콩쿠르의 성적표가 자신의 실력과 음악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신감과 멘털”(류태형 평론가)도 가졌기 때문이다.
신창용은 “결과가 좋으면 좋겠지만, 결과가 안 좋다고 해서 그 사람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모든 콩쿠르는 사람이 심사하는 만큼 주관적이다. 결과를 떠나 콩쿠르를 준비하는 동안 얻는 발전이 부스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의 성장이 음악가로서도 빠른 시간에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주자들에게 국제 음악 콩쿠르는 “음악가들이 인터내셔널 연주자로 활동하기 위한 시발점”(허명현 평론가)이 된다. 많은 연주자들이 이미 특정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고도 또 다른 콩쿠르에 나서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허명현 평론가는 “클래식 음악 시장은 설 수 있는 무대와 연주 기회가 적은데, 콩쿠르를 통해 좋은 연주를 보여주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동력을 찾을 수 있다”며 “콩쿠르를 통해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찾고, 자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봤다.
피아니스트 조성진 역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의 우승을 계기로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했다. 쇼팽 콩쿠르의 막강한 권위와 위상은 5년 만에 한 번 배출되는 우승자를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자리에 올린다. 양인모 역시 “유럽 활동이나 해외 커리어에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임윤찬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아티스트에겐 “가성비가 높은 콩쿠르”로 통한다. 류태형 평론가는 “상금도 높지만, 매니지먼트부터 음반 발매, 연주 무대까지 아티스트 케어를 잘해주는 콩쿠르로, 피아니스트들에겐 알짜 대회라고 볼 수 있다”며 “아티스트가 알게 모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 더 큰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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