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쨋거나, 이번 생에서 원하던 걸/얻긴 했나?/그랬지./그게 뭐였지?/스스로를 사랑받은 자라고 일컫는 것, 내가/이 지상에서 사랑받았다고 느끼는 것.’(‘말엽의 단편’)

‘작가들의 작가’로 사랑받는 미니멀리즘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유고 시집 ‘폭포로 가는 새로운 길’ 중 유언과도 같은 시다.

미국 단편소설의 르네상스를 이끈 레이먼드 카버는 1988년 50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뜨기까지 삶이 평탄치 않았다. 농촌마을 제재소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10대에 가정을 꾸린 그는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고, 작가의 길도 순탄치 않았다.

대학에서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받았지만 육아와 생계를 위한 온갖 일에 뛰어들어야 했다. 전기가 끊기고 집세를 못내는 바닥생활을 경험하면서 오랫동안 그를 괴롭힌 알코올중독에 빠진다.

그러나 유능한 편집자를 만나면서 ‘제발 조용히 좀 해요’‘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대성당’ 등을 발표, 일약 미국의 새로운 기수로 떠오르게 된다.특히 1983년 출간한 소설집 ‘대성당’은 평단과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담백· 간결한 문체, 일상의 균열을 포착해내는 예민함으로 현대 단편소설의 전범을 보인 레이먼드 카버의 시집 ‘우리 모두(All of Us)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됐다. 국내에 처음 소개 되는 카버의 시집으로 840쪽에 이른다.

카버는 ‘대성당’ 이후 시쓰기에 전념, 1988년 타계하기 전까지 ‘불’‘물이 다른 물과 합쳐지는 곳’‘울트라마린’ 등 세 권의 시집을 냈다. 네 번째 시집 ‘폭로로 가는 새로운 길’은 유고시집으로 출간됐다. 이후 미발표 시 모음집도 나왔다. 시집 ‘우리 모두’는 이 다섯 권의 시집을 한데 묶은 것으로 카버 시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시들은 그의 단편소설을 읽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자와 장면, 풍경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저는 소설과 시를 같은 방법으로 쓰고, 그 효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장편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언어와 감정의 압축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책에 실린 305편의 시는 예술과 술, 일상과 가족, 자연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알코올 중독자로 지낸 시절과 가정에서의 불화, 작가로 성공한 이후에도 젊은 시절의 선택에 대한 책임과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을 마주하는 일 등 주로 실패와 상처로 점철돼 있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발견하고 삶을 사랑으로 마무리한다. 일종의 시적 자서전이다.

‘우리 모두, 우리 모두, 우리 모두는/우리의 불멸의 영혼을 구원하려 애쓰는데,/어떤 갈등은 다른 길들보다 더 빙글빙글 돌고’(‘스위스에서’)

‘친구들이여, 그대들을 사랑한다. 진심이야./그리고 내가 운이 좋아서, 특별한 혜택을 받아서./오래 살아남아 증인이 되기를 희망한다.’(‘2020년에’ 에서)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우리 모두/레이먼드 카버 지음,고영범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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