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립합창단 선곡 종교편향 논란
헨델 메시아·말러 부활·베토벤 합창교향곡…
위대한 명작 VS 특정종교 찬양 ‘뜨거운 감자’
불교계 “세금운영…기독교편향 공연 반대”
음악계 “이해부족…예술과 종교 분리해야”
공청회·토론의 장 통해 상생 도모해야
‘헨델의 메시아’는 클래식 합창의 정수로 꼽힌다. 국내 유수 합창단 관계자들은 “교회음악이 지닌 종교적 특수성이나 한계를 벗어나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위대한 명작”이라고 입을 모으나, 이와는 상반된 입장도 나온다. 합창계에 따르면 불교계는 헨델의 메시아를 비롯해 말러의 부활,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 브람스의 레퀴엠 등 다수 합창곡을 편향된 종교곡으로 보고 있다. 국·시립 합창단의 선곡을 둘러싼 논란으로 예술과 종교 사이의 줄다리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불교계는 전국 국·시립합창단의 레퍼토리에 대해 ‘기독교 중심의 종교편향 공연’이라는 문제를 제기, 문화체육관광부에 각종 조사와 ‘재발 방지’를 요청하고 있다. 합창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충청권에서 열린 한 시립합창단의 정기연주회 레퍼토리가 이러한 논란으로 전면 변경됐다. 이날 무대는 ‘새로운 봄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사랑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합창곡으로 대체됐다.
앞서 지난해 12월에 열린 춘천시립예술단의 ‘2021 송년 음악회’도 종교편향적 행사라는 지적 속에 종교 중립 대책 방안을 요구받기도 했다. 해당 지역의 한 불교단체는 춘천시로 보낸 공문에서 “시립예술단은 송년 음악회라는 타이틀을 내세워 특정 종교편향 공연을 자행한 데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춘천시립합창단은 당시 음악회에서 멘델스존의 ‘찬미의 노래’를 연주했다.
국·시립합창단의 종교 편향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불교계에선 각 합창단의 공연 이후 각각의 시, 도는 물론 문화체육관광부로 공문을 보내 문제 제기를 이어왔고, 성명을 통해 입장을 밝혀왔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는 앞서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합창단과 일부 시립합창단이 잇따라 특정종교를 찬양하는 선교공연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는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적인 조치 등 구체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여러 시립합창단에선 공연 전 레퍼토리를 검열, 변경하거나 공연을 취소한 사례도 나온다. 합창계 관계자들은 “레퍼토리의 선정과 연주는 예술감독, 지휘자의 고유 권한인데 이를 검열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입을 모은다.
불교계의 ‘종교 편향’ 지적에 대해 클래식 음악계의 입장은 “서양음악의 기원과 합창작품의 성격상 종교 색채를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기독교는 종교일 뿐 아니라 서양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해온 만큼 완전히 배제한 멸균 상태의 음악을 합창단이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음악계에서도 합창곡을 둘러싼 종교 편향 논란은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라는 데에 공감한다. 류태형 평론가는 “내부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국·시립합창단 역시 한편으로 종교부흥회와 같은 인상을 주거나 종교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불교총연합회는 최근 4년간 대구시립합창단의 공연 목록 193곡을 분석, 절반에 해당하는 88곡(46%)을 기독교 찬송가라고 봤다. 국립합창단도 2013년부터 진행한 정기공연에서 전곡이 기독교 종교음악으로 편성된 경우가 25회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합창계는 그러나 “기독교 용어가 들어갈 경우 모두 기독교 음악이라고 분류했다”는 입장이다. 한국합창지휘자협회를 비롯한 4개 합창 단체는 “통상 찬송가는 교회의 예배 중에 사용하는 회중음악을 말하고, 선교찬양은 보통 전도집회 시 불리는 복음성가나 찬송가를 지칭한다”며 “국·시립합창단들이 연주하는 곡들은 수준 높은 연주용 합창음악으로 합창문헌에 수록돼 있는 곡들이며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아 전 세계적으로 애창되고 있는 곡들”이라고 강조했다.
이기선 부산시립합창단 예술감독 역시 “르네상스에서 시작한 합창의 뿌리는 고전시대에 들어와 세속곡이 생겨나고, 현대까지 다 합쳐도 70% 이상은 기독교 소스다”라며 “그러나 이는 기독교 예식 음악이 아닌 예술곡이다. 이를 찬송가로 호도하는 것은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국·시립합창단은 오히려 특정 종교에 편향된 선곡이 아닌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성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윤의중 국립합창단 예술감독은 “‘위대한 합창’ 시리즈, 칸타타 시리즈 등과 함께 일 년에 네 번 창작곡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일 년 레퍼토리의 3분의 2 가량을 창작곡에 기울이고 있다”며 “국립합창단은 중용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예술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인정하며 합창음악, 불교음악이 함께 발전하고 상생의 길을 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성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일련의 종교편향 논란은 예술과 종교를 분리해 바라봐야 한다는 논의로 나아간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헨델, 바흐 등의 클래식이 종교로의 귀의를 종용한다기 보다 당시 사람들의 신앙심이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문화재로 봐야 한다”며 “종교도 진화하고 있다. 어제의 종교와 오늘의 종교가 같다고 볼 수 없고, 삶과 역사 속에서 진화하는 생물이라고 봐야 한다. 그것에 기반한 음악에 종교적으로 의미를 두는 것은 경계하되 객관적인 입장에서 인류 보편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일범 평론가도 “바흐, 멘델스존, 말러의 세계가 기독교적이어서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들이 인류의 예술 걸작이자 문화유산이며 합창단에겐 도전적인 곡이기에 연주하는 것인 만큼 예술과 종교를 같은 차원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서로의 입장을 나누고 상생을 도모하기 위한 ‘공론의 장’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류 평론가는 “내부에서 서로 이야기를 해도 배타적 입장을 취해선 문제의 진전이 있을 수 없다”며 “양측을 비롯한 다양한 주장과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샘플을 마련해 동수로 원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공청회나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