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연합뉴스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연합뉴스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치료 대신 묵묵히 죽음을 받아들이며 최근까지 연구와 저서 집필에 몰두해왔다.

이어령이란 큰 산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비평가이자 작가·에세이스트·칼럼니스트·문화기획자·신앙인·사상운동가로서의 그의 족적은 넓게 퍼져 있다.

1956년, 24세에 문제작 ‘우상의 파괴’로 등단한 이후 그는 문학의 영역을 넘어 활동가로서 시대의 현상을 예리하게 짚고 새 언어로 전망을 열어왔다. 가령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정보화사회의 특징으로 ‘디지로그’라는 개념을 창안하는 등 한국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다.

1960년대 이어령은 평론에서 소설과 에세이로 확장해 ‘장군의 수염’ ‘무익조’ ‘전쟁 데카메론’ ‘환각의 다리’ 등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1972년엔 문학사상을 창간, 1985년까지 13년간 이끌어 오며 한국문단의 지평을 넓혀왔다.

고인은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의 총괄 기획을 맡아 문화 기획자로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특히 ‘굴렁쇠 소년’은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맡아 이듬해 12월까지 재임하며 문화정책의 기틀도 마련했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도 그는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독보적인 작품인 ‘축소지향 일본인’을 비롯, 신문 칼럼을 모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무신론자에서 신앙인으로서 삶을 담은 ‘지성에서 영성으로’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한국인 이야기’ 등 내는 책마다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 냉철한 지식을 앞세운 무신론자에서 말년엔 신앙인으로 세례를 받으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늘 날카로운 글을 써온 창조성의 대가, 언어의 마술사 등으로 불렸지만 그는 늘 목말랐다. 보들레르처럼 아름다운 한 줄의 시, 글을 쓰기를 갈망했던 그는 “그저 끝없이 쓰는 것이 행복인 동시에 갈증이고 쾌락이고 고통”이라고 술회했다. 그런 자신을 그는 ‘언어 노동자’로 불렀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한국인 이야기'를 통해 탄생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꾼의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삶의 끝자락에서 더욱 뜨겁게 생과 사를 알고자 했던 그는 저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뒤늦게 깨달은 생의 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거죠.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어요.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차남 이강무 천안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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