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 1호 유재철 씨는 노무현·김대중·김영삼·노태우·최규하 전직 대통령들의 마지막 길을 모신 염장이다. 어느 죽음도 가볍지 않지만 대통령의 죽음은 사회적 관계를 정리해야 하는 상징성 때문에 더욱 엄중하다.
‘고인 중심의 장례문화’를 강조해온 유 씨는 그가 모신 대통령들의 마지막 모습을 ‘대통령의 염장이’(김영사)에 담아냈다.
그는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황망했던 죽음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봉하 마을회관에 빈소를 차리고 더운 날씨 때문에 시신부패방지를 위한 엠바밍 작업을 했던 일을 전하며, “굳게 다문 입술에서 한 시대를 모두 짊어진 듯한 깊은 고뇌와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을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고 돌아봤다.
노 전대통령의 장례식은 조문객이 많아 예를 갖추는 것 만으론 허전해, 소원지로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연을 적은 노란 리본이 장관을 이뤘다.
장례식에선 늘 돌발상황이 발생한다. 그는 장례위원회로부터 서울시청 앞 노제에 쓸 만장 2천개를 준비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다. 대나무 깃대 2천개도 준비해야 하고 글씨를 쓸 서예가를 동원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급히 조계사에 협조를 구했다. 때마침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만장을 쓰는 모습이 방송에 나가 전국의 서예가들이 몰려들어 하루 반 만에 채울 수 있었다. 문제는 대나무 깃대였다. 가까스로 구했는데 만장 깃대를 PVC파이프로 바꿔달라는 주문이 다시 왔다. 그가 나중에 들은 이유는 대나무가 죽창이 돼 청와대로 향하게 될 위험 때문이었다나?
그는 노 전대통령의 묏자리가 자신이 원했던 부엉이 바위를 등지는 쪽 대신 부엉이 바위를 마주하는 쪽을 택한 데 대해 여전히 탐탁지 않게 여겼다.
2011년 김대중 대통령의 국가장은 ‘국가장법’을 제정하는 계기가 됐다. 유 씨는 그동안 무분별하게 이어져온 일제식 장례문화 대신 전통장례문화를 되살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상주가 차는 완장을 없애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통 상복에는 심장과 가장 가까운 왼쪽 가슴에 베 조각을 달아 슬픔을 표현했다.
김 대통령의 장례때도 한 가지 실수가 나왔다. 하관할 때 관을 감쌌던 태극기를 의장대가 접어 이희호 여사에게 드리니 “평생 나라 생각하신 분이니 관 위에 놓아드리라”라고 해 그만 태극기를 관과 함께 묻어버린 것. 태극기는 태울지언정 절대 땅에 묻어서는 안된다. 다행히 이후 꺼내서 정갈하게 불태웠다는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장례식에선 유족들이 흔쾌히 승낙, 상주의 왼팔에 완장 대신 베로 만든 상장을 왼쪽 가슴에 달았고, 군사문화의 하나인 운구병들의 마스크 착용도 없앴다.
저자는 “사회 지도자들의 장례식이 의미있는 것은 예를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병에 시달리다 지난해 세상을 뜬 노태우 대통령의 끝도 지켰다.
그는 “오랜 병상 생활로 체구가 상당히 왜소해지셨고 얼굴도 많이 수척해지셔서, 기억에 남아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컸다”고 했다. 그는 염습과정에 자녀들을 참여시켰는데, 처음엔 약간 머뭇거리다가 정성스럽게 해나갔다며, 이는 고인을 위해서나 유족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장례식은 소박하고 담백한 느낌으로 진행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하사하는 ‘무궁화대훈장’을 운구행렬에 쓰면 시끄러워질 것 같아 생략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했는데, 유족들이 기꺼이 받아주었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죽음의 시기가 뒤바뀌었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원만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고 감회를 털어놨다.
책은 법정 스님 등 큰 스님의 마지막 길과 고인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에 해야 할 일,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등 웰다잉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안내한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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