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레모사(김초엽 지음, 현대문학)=있음직한 SF세계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담아내는데 탁월한 김초엽 작가의 신작. 화학물질 유출사고로 출입금지된 ‘죽음의 땅’ 이르슐르국의 므레모사가 마침내 개방되면서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는 SF호러다. 첫 여행자 여섯 명은 대중의 관심이 쏠린 방문 이벤트에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여행자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여행경험이 많고 다크투어에 관심이 많은 60대의 헬렌과 관광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이시카와, 태국 기자 탄, 한국의 영상콘텐츠 제작자 주연, 망한 사업가 레오, 유명 무용가였던 환지증에 시달리는 유안은 므레모사의 첫 방문객이 된 설렘과 의구심을 품은 채 여행에 나선다. 여행 첫날 밤, 유안은 레오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혼란에 빠지는데. 여행자들은 무엇엔가 홀려 당초 여행 목적은 잊은 채 함정에 빠진다. 유안은 어떻게든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지만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는 곳’, 달콤한 향기가 나는 므레모사는 그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는다. 이르슐국 렘차카 특별구역은 지도에도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는 곳으로, 원인불명의 대화재로 전 지역이 불타면서 세상에 알려졌던 곳이다. 한 달간 이어진 화재로 인근 지역들이 유독성 화학물질에 노출, 죽음의 땅으로 바뀌는데, 므레모사는 그 중 렘차카와 가장 가까운 동네다. 그런데 끔찍한 비극 이후 집으로 다시 돌아온 귀환자들이 좀비가 됐다는 소문이 들리게 된다. 작가는 낯익은 재난 서사를 새로운 방식으로 들려준다.

▶송나라의 슬픔(샤오젠성 지음, 조경희 외 옮김, 글항아리)=화약과 나침반, 활자인쇄술 등 세계적인 문명을 자랑했던 중국의 송나라는 왜 멸망했을까? 소수민족 투자족 사람으로 후난일보 기자인 샤오젠성이 20여년 간 자료조사와 각고의 노력으로 집필한 이 책은 2007년 중국 당국의 검열로 출판이 무산됐다가 2009년 홍콩에서 출간돼 화제가 됐다. 이번 한국어판은 저자가 제공한 원본을 번역했다. 저자에 따르면, 송은 문화는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복지, 문화, 외교, 의료체계 모든 면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할 만큼 최고조의 문명을 구가한 나라다. 황제가 존재했지만 개방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씨앗을 품고 있었다. 부의 분배도 현재보다 훨씬 나았으며 사회복지 제도도 잘 짜여져 있었다. 사상적 다양성, 과학의 발달에도 산업혁명, 근대화로 나아가지 못했다. 저자는 그 이유로 우선 신 중심 문화가 인본문화로 대체되지 않고 인간을 신격화한 데서 찾는다. 즉 인간세상에서 신과 같이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성인이 사회를 다스리기를 바라며, 강권과 폭력을 참고 견디는 사회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또한 폐쇄적인 내륙환경으로 해상무역이 발달하지 못해 상업 경쟁과 정보 교류가 제한 된 점도 강권 정치를 가능케 했다는 지적이다. 농업중심 사회는 가족·혈연 중심의 폐쇄적 사회를 구성, 정보의 교류나 논쟁 대신 오로지 조화와 평온함 만이 강조됨으로써 시민사회가 발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생산성이 낮은 농업중심의 자급자족은 시장의 발달을 저해하고, 경쟁없는 사회를 형성, 쇠퇴의 길을 겪게 된다. 저자는 선진시대부터 진한·당송·명청·민국 시대 등 중국사를 큰 틀에서 통관, 현 중국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래서 유럽풍이란 게 뭔가요(이은화 지음, 폭스코너)=아파트 광고, 인테리어, 거리에까지 ‘유럽풍’이란 말이 흔히 쓰이지만 유럽풍이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리송하다. 건설사에서 일하던 저자는 유행처럼 쓰이던 그 실체가 궁금해 무작정 이탈리아로 넘어가 현지 디자인회사에 취직했다. 이후 문화가 전혀 다른 이탈리아와 독일의 디자인 회사에서 전 유럽을 상대로 종횡무진 일을 하면서 진짜 유럽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방랑 디자이너’란 별칭에 걸맞는 삶을 살아온 그는 이탈리아에 자신의 스튜디오인 ‘인시드 디자인’을 운영하며 유럽 각지의 고객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이어오고 있다. 책은 저자가 지난 20여년 동안 유럽을 직접 감각하고 체득한 문화와 예술을 현직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소개한다. 특히 유럽 문화의 정수를 간직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독일 4개국의 예술과 문화,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밀라노 가구전의 충격, ‘메이드 인 이탈리아’의 장인정신, 모던함과 아르누보를 합친 필립 스탁의 창의적 발상, 윌리엄 모리스 패턴에 대한 영국인들의 애착,바우하우스의 현재적 의미 등은 디자이너 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과 해석을 보여준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이탈리아 식문화가 융합된 리옹의 음식, 쾰른 카니발의 자유분방함,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의 소박한 정겨움도 생동감있게 전한다. 저자는 유럽풍이란 말로 뭉뚱그려 알고 있는 유럽 문화의 실체와 각국의 개성적인 삶과 예술을 다각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유럽문화의 미적 요소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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