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어디까지 왔나
유선형 디자인의 늘씬한 전기차가 회색빛 터널을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주인공은 전자문서를 넘겨보며 인공지능(AI) 비서에게 최근 통화 내용을 요구한다. 음성지문을 인식한 AI 비서는 통화가 연결될 때까지 음악 감상을 권한다. 장면이 전환될 때까지 주인공의 시선은 전방을 향하지 않는다. 차는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달릴 뿐이다.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2004년 개봉한 영화 ‘아이로봇(I, Robot)’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는 완전자율주행 모드를 갖춘 다양한 모델이 등장한다. 특정 브랜드의 콘셉트카가 주축이지만, ‘무인(無人)’ 기술에 초점을 맞춘 시대적 표현이 흥미롭다. 주인공이 대시보드에 숨겨진 스티어링휠을 꺼내 직접 운전하려는 것을 보고 동승자가 “과속이라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장면은 기술에 대한 높은 신뢰를 보여준다.
본격적인 완전자율주행 시대는 영화가 그린 2035년보다 더 빠르게 우리 곁으로 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빠르게 진행 중인 전기차 전환 속에서 자율주행의 핵심 기술로 불리는 라이다(Lidar)·레이더(Radar)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며 양산차에 탑재되고 있어서다. 평면(2D)에서 입체(3D)적인 분석이 가능한 매핑(Mapping) 기술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하드웨어(HD)보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해 기술적인 수준을 높이는 소프트웨어(SW) 기술만 남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련기사 6면
전 세계 스타트업과 완성차들이 전기차와 함께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면서 상용화 시점에 대한 윤곽도 뚜렷해지고 있다. 업계가 예상하는 완전자율주행 시점은 2025년이다. 도시 인프라와 전기차 주행거리 개선 시기를 고려하면 ‘아이로봇’에서 그린 미래보다 5년 빠른 2030년에는 운전대 없는 차를 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내년부터 운전자가 없는 차를 일반도로에서 볼 수 있다. 우선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 레벨4 수준의 로보라이드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다. 서울시는 ‘자율주행비전 2030’을 발표하면서 강남에서 로보택시를, 청계천에는 자율주행 버스를 순차적으로 도입한다고 밝혔다. 스마트시티의 일부 시범구역과 연구소 테스트베드에 국한됐던 자율주행의 범위가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독일 ‘빅3(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를 비롯해 테슬라, 리비안, 폴스타 등 신생 전기차 업체와 중국 IT 스타트업까지 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은 ‘춘추전국시대’다.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는 기술의 혁명은 앞으로 로보라이드, 로보셔틀 뿐만 아니라 물류와 UAM(도심항공교통)으로 판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관전 포인트는 안전과 편의에 중점을 둔 이른바 ‘K-모빌리티’다. 국내 완성차 및 부품사, 지자체도 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접목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다. 장웅준 현대차 자율주행사업부장(상무)은 “자율주행 기술은 보편적 안전과 선택적 편의라는 방향성이 핵심”이라며 “(자율주행은) 물류 배송에 최적화한 로보트럭 등 앞으로 다양한 분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찬수 기자
and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