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기후로 본 한반도 역사
2만 년 전 최종빙기 최성기 이후 인류 유입
송국리 문화 소멸은 2800년 전 가뭄이 원인
농경인 제주도와 규슈로…日 야요이 시대 열어
몽골의 침입은 기후 탓?, 고려는 대기근
역사의 굴곡엔 기후변화가 국정혼란 가속
태양 흑점, 화산활동, 세차운동 등이 영향
고기후 알아야 미래 준비..韓, 中日에 뒤쳐져
기후변화가 인류의 진화와 문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환경결정론이 최근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의 역사를 기후변화를 통해 살핀 책이 처음으로 나왔다.
국내 고기후학, 고환경학 분야의 독보적 연구자인 박정재 서울대 교수(지리학과)가 쓴 ‘기후의 힘’(바다출판사)은 인류의 진화에서부터 조선 왕조의 흥망성쇠까지 기후가 어떻게 한반도에 작용해 왔는지 기후와 환경, 역사를 하나로 엮은 최초의 한반도 빅히스토리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박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의 역사는 대략 3만 년 전에서 2만 5000년 전 사이 시작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세차운동에 따른 기후변화로 아프리카를 떠난 두 번의 이동, 즉 11만 년~9만 년 전과 7만~5만 년 전에 이들의 일부가 계속 동쪽으로 이동, 인도차이나반도를 거쳐 순다랜드까지 이동하게 된다. 그 일부가 다시 북쪽으로 이동, 동시베리아, 중국 북부, 만주 등에 정착하는데, 이들 만주 수렵·채집민 중 일부가 이 시기에 한반도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남하 역시 차가워진 기후가 원인이었다. 2만4000년 전에서 1만9000년 전 사이 지구의 추위는 절정에 달한 것으로 본다. 바로 최종빙기 최성기로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서해 전체가 뭍으로 드러났다. 당시 한랭 건조한 기후로 한반도와 서해를 포함하는 동북아 지역 대부분은 지금의 몽골 초원과 비슷한 스텝 식생을 형성한다.
한반도의 고대사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기후 급변 사례는 홀로세 초기 8200년 전(8.2ka 이벤트)과 홀로세 후기 4200년 전(4.2ka 이벤트) 일이다. 한반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후자는 해수면 온도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북반구 대부분에 영향을 미쳤다.
세계 최초로 농경이 시작된 서남아시아의 경우, 4200년 전부터 강수량이 급감, 관개농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제국 아카드왕국도 대규모 가뭄에 힘을 잃고, 인더스 문명도 치명타를 입게 된다. 한반도는 대략 4800년 전부터 건조해져 이후 1000년 이상 건조화 경향이 지속된다.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상대적으로 높아 장주기 엘니뇨 조건이 강하게 나타나면서 한반도를 포함, 동북아시아 해안 지역에 가뭄을 몰고 왔다. 당시 가뭄은 한반도의 수렵·채집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쳐 주 식량인 참나무의 도토리 생산량을 크게 감소시켰으며, 이는 야생동물 개체수 감소로 이어져 사냥이나 채집활동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고고학 발굴로 드러나는데, 대략 6000년 전부터 증가하던 주거지 수가 4800년 전에 이르러 급감하며, 1000년에 걸쳐 감소세를 보인다. 먹거리를 찾아 이동이 잦아진 결과다. 이후 500년 주기로 한반도는 가뭄을 겪다가 3500년 전부터 기후가 양호해지고 벼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 인구가 급증하게 된다. 벼농경은 남중국에서 요동을 거쳐 유입된 농경민이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부터 중국인과 유전적으로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집약적 벼농경의 시작과 인구증가가 절정에 달한 시기는 2800년 전 송국리 문화와 관련이 있다.송국리 문화는 우리나라 선사시대 대표 문명으로 수도작을 기반으로 충청 이남의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송국리 문화는 2500년 전 갑작스레 사라진다.
송국리 문화 소멸의 수수께끼 역시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저자는 광양에서 발견된 꽃가루 자료를 바탕으로, 2800~2700년 전 소위 2.8ka 이벤트라 불리는 갑작스런 단기 가뭄이 발생한 데서 원인을 찾는다. 이 시기에 퇴적된 전체 꽃가루 중에 나무 꽃가루의 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진 것이다.
가뭄으로 농경민들은 벼 농경에 유리한 지역을 찾아 이주, 이들 중 일부는 제주도로, 또 일부는 바다건너 일본 규슈 일대에 도착해 일본의 야요이시대를 열게 된다.
중세 온난기로 불리는 기원후 900~1300년, 한반도는 강수량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1400년부터 전 지구적으로 나타난 소빙기에 비해 강수량이 적었고 건조했다. 이유는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장주기 엘니뇨 조건에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적도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높고 서태평양의 온도가 낮은 장주기 엘니뇨 상황이 오면 한반도로 전달되는 수증기 양이 감소한다. 특히 1200~1300년 사이가 건조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23대 국왕이었던 고종의 통치기간(1213~1259년)에 가뭄에 따른 기근이 자주 발생했다. 고종16년과 17년 두 해에는 기근으로 길 위에서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했다.
이 때는 몽골의 침략으로 내내 참혹한 전쟁을 치러야 했는데, 저자는 징기스칸의 소규모 기마부대가 광범위한 영토를 정복한 비결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몽골의 경우 1211년부터 강수량이 증가해 초원의 생산량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반도에서 중세 온난기가 끝나고 소빙기가 시작된 때를 1500년 경으로 꼽는다. 강수량이 증가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중보문헌비고’는 1550년에서 1900년까지 소빙기의 대부분 기간 동안 대체로 강수량이 많고 추웠다고 기술하고 있다. 1670년, 1671년의 경신대기근과 1695~1699년의 을병대기근은 소빙기에 나타난 이상 기상 현상에 따른 것이란 해석이다.
두 차례의 대기근 이후 1715년 즈음엔 태양의 활동, 즉 흑점수의 증가와 함께 추위는 물러난다. 영조와 정조가 후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데는 양호한 기후가 한몫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순조는 운이 나쁜 편이다, 1800년에서 1834년까지 순조의 재위기간은 달튼 극소기와 일치, 기후가 도와주지 않았다. 기온이 갑자기 낮아진 것이다. 탐관오리의 득세로 삼정은 문란했으며 백성들은 곤궁했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이 발생한 데는 기후변화 탓도 있다.엎친 데 덮친 격으로 1815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해 1816년 극심한 흉년이 닥친다. 1816년 호구조사에 따르면 2년 만에 인구가 무려 130만 명이 감소했다.
저자는 과거의 기후변화가 지구의 공전 궤도 변화, 자전축 변동, 세차운동이나 태양 흑점 수, 화산 폭발, 해양 순환 등 자연적 현상에 따른 것이었다면, 지금의 지구온난화는 인위적인 것인 만큼 우리의 의지 여부에 따라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환경사 연구가 척박한 현실을 지적, 향후 기후변화에 대처하려면 한반도의 고기후 연구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기후의 힘/박정재 지음/바다출판사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