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택 구성원들의 화목한 모습. [담양 양진재종가]
종택 구성원들의 화목한 모습. [담양 양진재종가]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자식을 기르는 부모야말로 미래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한다. 자식들이 조금씩 나아짐으로써 인류와 이 세계의 미래는 조금씩 진보하기 때문이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가정이 인류 진보의 밑바탕이라고 설파했다. 이는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동양 철학의 서양판이라 할 만 하다.

‘행복한 가정은 미리 누리는 천국’, ‘천국은 어머니의 발 앞에 놓여있다’, ‘키스해 주는 어머니도 있고 꾸중하는 어머니도 있지만 사랑하기는 마찬가지다’는 가르침과 율곡 이이가 말한, 단순하지만 명쾌한 신체발부 수지부모 철학 즉 ‘천하의 모든 물건 중에는 내 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몸은 부모가 주신것’이라는 진리는 세대간 서로 보살피는 일이 매우 소중함을 새삼 일깨운다.

5월의 가정의 달이다. 야만과 계몽, 남존여비와 여풍당당이 교차하던 조선시대에도 양성평등의 족보를 쓰고, 재산분배기록을 관아에 공증하는 등 선진 가정문화를 일구려는 개척자들이 있었다. 건강한 전통 미식을 수호하는 일은 지금 K푸드의 세계화를 낳고 있다.

영광의 연안김씨 김진은 70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렸다.

상주 여산송씨 우곡 송량을 모신 효곡재사(孝谷齋舍)는 마을 이름을 효곡리로 바꾸었다. 전국 곳곳에 효자동이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위기 속에서도 가족은 안식처였다. 안동 학봉 김성일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모님 모시고 명절 잘 보내라’는 당부와 ‘너무 그리워 말고 편히 계시오’라고 우회적으로 표현된 학봉의 진한 그리움이 배어있다.

상주에 전해진 회화 ‘월간 창석 형제 급난도(月澗蒼石兄弟急難圖)’는 형제간 우애를 그렸다. 임진왜란 이듬해인 1593년(선조 26) 이전-이준 형제가 머물던 향병소(鄕兵所)에 왜군이 들이닥쳤고, 곽란으로 몸이 불편한 이준이 형에게 혼자만이라도 피할 것을 간청했으나 형은 끝내 동생을 업고 백화산으로 몸을 피해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일화를 담았다.

딸, 아들 구분 없이 나이 순으로 적고, 딸과 며느리 가계 역시 소상하게 기록하는 등 양성평등 족보 포맷으로 유명한 강진 해남윤씨 윤광택은 ‘남이 나를 한번 속이면 나의 복은 한층 높아지고 내가 남을 한번 속이면 나의 복이 한층 깎이니 절대로 남을 속이지 말라’는 가르침을 가족들에게 남겼다.

형제 간 분란의 소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재산분배 원칙과 내용을 글로 적어 관아에 공증한 것으로 유명한 담양 고씨집안의 경우, 종부 기순도 명인-고훈국 종손 부부가 방탄소년단(BTS) 파리공연을 계기로 한국의 발효 과학을 유럽에 알렸다.

경북 영양의 재령이씨 종가의 음식디미방이 영남의 전통음식 문화를 선도했다면, 전남 나주의 풍산홍씨 창애공파 종가는 ‘음식보’라는 책을 남겨 건강미식 과학을 발전시켰다.

5월은 가족들이 놀러가서 즐기는 것 못지 않게, 꿀맛 같은 정이 흐르는 가정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 한번 더 쓰다듬고, 한발치 물러서 이해해주는 노력도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