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지역 연고 고려 대표작 지역行
국립현대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 외
전국 5개 지방미술관에 102점 기증
“미술사 연구·문화권 향유 기회 될 것”
‘이건희 컬렉션’을 빠르면 내달부터 만날 수 있다. 대구 대표 화가 이인성, 경북 울진 태생 추상 거장 유영국 등 이건희 컬렉션 21점을 기증받은 대구미술관은 다음 달 예정된 개관 10주년 기념전 ‘대구근대미술전-때와 땅’에 해당 작품들을 선보이기로 했다. 기증작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이다. 작가가 자신의 아내인 김옥순을 그린 것이다. 일본 동경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던 신여성이었던 김옥순은 노란 원피스를 입고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앉아 턱을 살짝 괸 채 앉아있다. 발 끝에 살짝 걸린 슬리퍼까지, 세련된 취향이 돋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지방 미술관 5곳에도 이건희 컬렉션이 기증됐다. 지역간 문화격차 해소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기증 품목은 화가의 고향, 연고 등을 고려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작품을 기증받은 미술관들은 미술관 컬렉션의 질적 상승과 지역 미술사와 작가 연구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장 많은 작품을 받은 곳은 광주시립미술관이다. 총 30점을 기증 받았다. 전남 신안 출신의 대한민국 대표화가 김환기(5점), 화순 출신의 오지호(5점), 광주민주화 운동 직후 시위 군중을 표현한 군상(群像)시리즈로 잘 알려진 이응노(11점), 국민화가 이중섭(8점), 오지호의 후임으로 조선대 미대교수로 재직했던 임직순(1점)등이다. 전승보 광주시립미술관장은 “지역 연고의 근현대 대표작가 작품을 기증받았다. 기증자의 배려라고 생각하며, 향후 미술관의 품격과 소장품의 질적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작품들은 개관 30주년을 맞는 2022년에 공개할 예정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진도 출신의 의재 허백련, 화순 출신의 오지호, 신안 출신의 김환기, 고흥 출신의 천경자 등 총 9명 의 작가들의 작품 21점을 기증받았다. 기증작 중 김환기의 ‘무제’는 전면점화(全面點畵)가 시작되기 전의 작품으로, 화면을 가로지르는 십자구도가 인상적이다. 천경자의 ‘꽃과 나비’, ‘만선’은 1970년대 작가가 동양화라는 매체를 넘어서고자 실험했던 시기의 작품이다. 미술관측은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9월 1일 개최할 예정이다. 이후 상설관을 마련해 이건희 컬렉션을 별도로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작품 18점을 전달받았다. 미술관측은 “2004년 개관 2주년 기념식에 자작나무를 기증하셨는데, 그 인연이 작품기증까지 이어졌다”며 “홍라희 여사가 고(故) 이건희 회장의 마음과 뜻을 이어가고자 가족을 대표해 작품을 기증한 것”이라고 거듭 감사의 뜻을 밝혔다. 기증 받은 작품은 ‘아기 업은 소녀’(1962), ‘농악’(1964), ‘한일(閑日)’(1950년대), ‘마을풍경’(1963) 등 유화 4점과 드로잉 14점이다. ‘한가한 날’을 의미하는 ‘한일’은 해외에 반출됐다가 2003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아 다시 국내에 들어왔다. 미술관측은 오는 5월 6일부터 열리는 박수근 작고 56주기 아카이브전시에 기획섹션을 만들어 기증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제주도 이중섭미술관은 이중섭의 대표작 12점을 기증받았다. 이중섭이 6·25 한국전쟁을 피해 서귀포로 피난왔을 당시 제작한 ‘섶섬이 보이는 풍경’, ‘해변의 가족’, ‘비둘기와 아이들’, ‘아이들과 끈’ 등이 포함됐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9일 브리핑을 열고 “이중섭 화가의 귀한 작품을 기증해주신 삼성가에 감사드리며 기증 작품을 지역문화 자산으로 잘 보존하고, 활용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미술관측은 이중섭미술관 인근 부지를 활용해 시설 확충을 계획중이다.
이번 기증은 한국 지역미술사 발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국민 문화 향유 기회확대와 지역간 문화격차 해소 등 사회환원의 의미가 크다. 이은주 대구미술관장은 “지역 미술관으로 지역 작가들 작품을 꾸준히 수집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이번 기증으로 지역 작가 컬렉션을 수준급으로 완성할 수 있게 됐다”며 “시기별로 중요한 작품들을 갖춤에 따라 작가 연구와 위상강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빛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