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청주김씨 강진파 종가
김억추(1548~1618) 장군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을 도와 대승을 이끈 명장이다.
그의 집안 청주김씨 강진파 김우필종가는 백성을 지켜냈던 선조의 호국정신을 공동체를 위한 헌신으로 확장시켜, 주민의 심부름꾼을 자청하며 현재 강진 14개 마을에서 이장을 하며 주민들의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
김억추는 백제 전통무술이 전승되던 강진 수인사 아래 금곡사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바닷길을 익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왕이 평양으로 파천하자, 방어사로서 허숙(許淑) 등과 함께 수군을 이끌고 대동강을 지켰다. 이후 명량해전을 세심하게 준비하는데 참여했다.
1594년 만포진 첨절제사(무관 종3품)가 되고, 이어 진주목사·고령진 첨절제사를 지냈다. 정유재란이 일어난 1597년 정3품에 올라 전라우도수군절도사가 되어 통제사 이순신을 따라 어란포해전과 명량해전에서 승전한 뒤 선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전후에는 재침략에 대비하다 강진에 물러나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마감했다. 훗날 정조는 금강사(전라남도기념물 제91호)를 건립, 이순신과 김억추을 배향토록 했다. 중건 때 김응추, 김대복이 함께 배향된다. 대종회는 충무공 외에 숱한 해전 영웅들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면밀한 학술연구를 위한 협력활동을 벌이고 있다.
청주김씨 대동보에 따르면 고려 개국 삼한공신으로 수도사 삼중대광을 역임한 김근겸(878~?)이 시조다. 김근겸은 경기도 파주 탄현의 고려통일대전에 400여명의 고려 위인과 함께 위패가 모셔져, 후손들이 매년 대제를 통해 추모한다. 2세 김희일(?~?)은 고려 광종 때인 962년 청주 호족으로 용두사지에 철당간(탱화 및 깃발 장대. 철기둥 30칸 중 20칸이 보존중)을 남겨, 현재 국보 제41호로 지정됐다.
13세 김린(1338~1410)은 장흥에 입향해 호남시대를 열었고, 그의 넷째아들 김보생이 시강원 찬선을 지내고 강진에 입향했다. 18세손 김충정(1527~1598)은 1555년 을묘왜변의 참상을 잊지않고, 네 아들들에게 무예와 역사를 가르쳤다. 임진-정유 왜란의 공신록에는 김억추, 김응추 형제와 사촌 김인복, 김대복, 김덕복까지 이름을 올렸다. 김충정의 큰아들이 김억추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 승전 주역들의 이름 하나하나가 국민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길 기대해 본다. 함영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