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준대형 세단이라고 하면 정장을 중후하게 차려 입은 50대 이상의 신사의 모습과 연결되던 때가 있었다. 준대형 세단이 자신의 직업에서 성공을 이룬 증표였기 때문이다. 기아 K8은 이런 고정관념을 깨는 데 성공했다. 40대는 물론 30대, 아니 그 누구라도 고급스러우면서도 파워풀한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기아 K8에 주목할 것이다.
기아 K8을 마주하면 누구나 범퍼와 일체화된 거대한 라디에이터그릴에 눈이 갈 수 밖에 없다. 사실 라디에이터그릴의 대형화는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퍼지는 트렌드다. BMW의 키드니 그릴이나 렉서스의 스핀들 그릴이 대표적이다. 그릴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보니 크기를 키워 존재감을 부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K8의 그릴이 독특한 점은 범퍼와 하나가 됐다는 점이다. 그릴 테두리는 물론 안쪽까지 바디 컬러로 통일하다보니 어디까지가 범퍼이고 어디부터 그릴인지 모호하다. 그릴 안쪽이 중간중간 막혀 있어 전기차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방식이다보니 젊은 느낌이 강하다.
범퍼 양쪽에는 주간주행등(DRL)과 방향지시등 역할을 하는 10개의 ‘스타 클라우드 라이팅’이 돋보인다. 스마트키로 도어 잠금을 해제하면 램프가 차례로 빛나며 운전자를 반겨준다. 이 정도면 ‘조명 맛집’ 아우디가 부럽지 않다.
쿠페 스타일이 가미된 바디 라인 역시 젊은 준대형 세단을 만드는 핵심 요소다. 보닛을 길게 만들고 지붕의 선을 트렁크까지 이어지도록 길게 빼다 보니 5m가 넘는 차체가 둔중하기 보다 날렵해보인다.
도어 하단의 크롬가니시는 뒤로 갈수록 솟아오르더니 테일램프의 양 끝단과 만나며 역동적인 느낌을 살린다.
K8의 외관 디자인이 스포티함을 극대화 했다면 실내 디자인은 고급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사실 실내에 처음 앉았을 때 든 생각은 “실내 구성과 소재의 고급스러움은 제네시스 못지 않다”는 것이었다.
디지털 콕핏과 인포테인먼트 화면이 하나로 이어지는 스타일이야 메르세데스-벤츠부터 최근 아이오닉 5까지 널리 퍼진 스타일이지만 K8이 특별한 것은 두 화면이 커브드 형태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전체 화면이 운전자를 감싸준다는 느낌은 주는 것은 물론 12.3인치 와이드 화면 어느 곳도 쉽게 터치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공조 관련 버튼과 멀티미디어 관련 버튼을 하나의 조작계에 합치고 전환 버튼을 둔 것 역시 깔끔함을 더하는 ‘신의 한수’다. 여러 기능의 버튼을 하나에 모으면 어떤 버튼이 어디에 있는지 찾지 어렵고 아예 모니터 안에 통합해 버리면 운전 중에 쉽게 누르기 어렵다. K8은 전환버튼을 누르는 한단계만 추가함으로써 간결함과 직관성 두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시트와 실내 트림 곳곳을 감싸는 가죽의 수준은 프리미엄 브랜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인조 스웨이드로 마감된 필러와 천장 역시 고급스러웠다. 1열 시트 에드레스트 뒷편에 가방이나 옷을 걸 수 있도록 홈을 파 오너 드라이버는 물론 2열 승객에 대한 배려심도 잊지 않았다.
K8이 3040대 ‘영 앤 리치(Young & Rich)’를 겨냥했다는 점은 주행감각과 승차감의 높은 완성도에서도 드러났다. 사실 주행성능의 스포츠성만 따지다보면 하체가 지나치게 단단해지면서 승차감을 해치고, 지나치게 컴포트성을 따지다보면 회전 성능이나 주행 안정성을 놓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K8은 그 적절한 균형점을 절묘하게 찾아냈다.
3.5ℓ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과 최대토크 36.6㎏·m의 동력 성능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투 챔버 토크 컨버터’가 적용된 신형 8단 자동변속기 덕분에 어떤 변속 충격도 없이 어느새 제한속도 근방까지 속도계 바늘이 치솟는다.
서스펜션은 부드러우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다소 높은 과속 방지턱을 빠르게 넘어도 추가 바운싱 없이 한번에 차체를 잡아준다. 속도가 높아지거나 스포츠모드로 전환했을 때 옆구리를 조여주는 시트도 안정감을 더하는데 일조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어느 순간에도 실내가 정숙했고 작은 떨림조차 느끼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준대형 세단의 가장 큰 미덕이다.
현대차의 경쟁자 더 뉴 그랜저보다 한층 강화된 각종 편의 사양과 옵션 역시 K8을 돋보이게 하는 부분이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과 차로유지보조 기능을 켜고 방향지시등을 작동하면 알아서 스스로 차선을 이동한다. 고속도로 주행보조2(HDA2)가 제네시스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적용된 덕분이다.
헤드업디스플레이(HUD) 역시 넓어져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유리창에 비춰준다. K8의 진가는 사진 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할수록 강하게 느껴졌다. 하루 평균 600~700대의 계약이 이뤄지는 이유를 확실히 깨달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