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백신 접종 4분의 3이 10개국에 집중
백신 27% 생산 美는 전량 내수로 소화, ‘백신 외교’ 필요성 대두
백신 생산 증가 속도 예상보다 빨라…공평한 백신이 팬데믹 종식 열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국가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부유한 나라들의 백신 독점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에만 전세계 인구의 70%가 접종할 수 있는 규모의 백신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 같은 공급 불균형이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종식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백신 생산량의 상당수는 여전히 일부 나라에만 집중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집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진행된 백신 접종건의 4분의 3이 10개국에서 발생했다. 심지어 30여개 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백신 접종이 단 한 명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륙별 격차도 심각하다. 현재 백신 공급 부족현상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은 아프리카다. 전 세계 인구의 17%가 살고 있는 아프리카에 공급된 백신은 세계 생산량의 2%에 불과하다. 이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인 케냐조차도 이달 초에야 첫 백신이 도착했다.
그러는 사이 부유국은 자국민에게 먼저 백신을 접종하기 위한 이른바 ‘백신 민족주의’는 더 심화하고 있다. 이날 미 매체 악시오스는 미국이 세계 백신 생산량의 27%를 자국 내에서 생산했음에도 수출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세계 백신 생산량의 33%를 생산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62%를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악시오스는 전문가를 인용, 중국이 백신 외교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지적하면서 “전 세계 백신 접종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고 이 일을 하라는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공급 부족 사태를 놓고 유럽연합(EU)과 영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경전도 점입가경이다.
최근 EU집행위원회가 영국으로 향하는 백신 수출을 금지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가운데, EU는 지난 21일 실제 네덜란드에서 생산된 AZ 백신을 수출하라는 영국의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영국에서도 일부 자국 백신 공장이 EU와 계약한 백신 공급 물량을 아직 보내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양측의 갈등이 쌍방 수출 금지 사태로 이어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이처럼 많은 나라들이 백신 사수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그렇다고 백신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다.
이날 듀크대 글로벌헬스혁신센터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예상되는 전 세계에서 120억회분의 백신이 생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세계인구 70%가 접종 가능한 규모다.
듀크대 연구진은 원자재 및 포장재 공급과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 등의 변수로 인해 백신 공급이 전망치보다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공평하게 백신이 공급된다면 예상보다 훨씬 빨리 팬데믹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유한 나라의 백신 민족주의를 향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이날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취약 계층을 희생하면서 코로나19 발병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자국의 젊은 층에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백신의 불평등한 분배는 그냥 도덕적 잔학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경제적인, 또한 역학적인 자멸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손미정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