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통' 교수, 모순의 나라 일본 해부

개인의 책임 예의 이면, 무책임한 관료

에도시대부터 형성된 순응 시스템탓

에도 265년 '평화의 시대'는 억압 산물

사무라이 관료화, 순종형 모델 만들어내

메이지 유신, 유럽 쫒다 정신분열 초래

전후 책임회피 일본…미군정에도 원인

“일본이 갑자기 외부로부터의 군사 위협과 국내의 격화된 자유민권운동에 직면하자, 사무라이의 가치는 에도 시대 박물관으로부터 꺼내져서 단지 근대화된 군대에 필요한 것이 아닌 군국주의 사회 전체에 필요한 가치로 재포장되었다.”(‘일본의 굴레’에서)
“일본이 갑자기 외부로부터의 군사 위협과 국내의 격화된 자유민권운동에 직면하자, 사무라이의 가치는 에도 시대 박물관으로부터 꺼내져서 단지 근대화된 군대에 필요한 것이 아닌 군국주의 사회 전체에 필요한 가치로 재포장되었다.”(‘일본의 굴레’에서)

‘일본은 자유국가가 아니다’

‘일본 권력의 수수께끼’의 저자 카럴 판볼페런의 이런 일본 평가는 다소 충격적인데, 일본에서 40년동안 살며 일본을 속속들이 들여다본 일본통 태가트 머피 쓰쿠바대 교수의 ‘일본의 굴레’(글항아리)를 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이는 일본의 안과 밖 모두에 해당된다. 일본 대중과 정치지도자의 관계이기도 하고,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머피 교수는 일본의 정치·경제문제를 문화, 역사와 함께 통합적으로 분석하면서,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의아해하는 일본의 모순과 정체성, 일본인들조차 인지하는 못하는 체화된 ‘일본적인 것’의 내면을 끄집어낸다.

일본은 흔히 국민 개개인의 책임감과 예의바름, 서비스 정신이 높이 평가된다. 상대방이 누구든, 좋든 싫든 최선을 다해 상대를 배려하는 것처럼 보인다. 주어진 일을 최대한 잘해내려는 의지와 감정이 내재화된 결과다.

이런 믿음과 약속은 국가적으로는 최근 후쿠시마 원전 사태나 코로나 19대응에서 무너져 내렸지만 국민들은 그래도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믿으며 애써 부정하려 한다. 저자는 매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성숙함이라 여기는 순응주의적 태도가 사회지도층으로 가면 권력자들이 착취하기 좋은 구조를 만들고, 권력자들이 자신이 하는 일과 동기를 스스로 기만하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한 예로, 일본의 재정문제나 세금과 물가에 대해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정부의 정책에 비판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대신 한숨을 내쉬며 ‘시카타가 나이’(할 수 없군!) 라며, 순응적 태도를 보이는 게 전부라는 것. 다른 대안, 가령 강한 노조나 노동자를 대변하는 건강한 정당, 확실한 사회 안전망, 가계의 실질소득을 늘려 내수를 진작시키는 정책 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대안들은 ‘일본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격받는다. 기득권 세력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묵살하도록 발전돼온 시스템탓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헤이안 시대부터 에도를 거쳐 근현대로 올라오며 이런 시스템이 어떻게 생겨나고 굳어졌는지살핀다. 그 뿌리는 에도시대 도쿠가와 막부에 있다. 일본이 근대 국가 시스템의 특징을 갖기 시작한 때다. 그리고 이때 일본은 세계사의 거시적인 흐름으로부터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일본의 문화가 서양은 물론 이웃 나라와도 현저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된 것이다.

에도시대는 흔히 265년간 이어진 ‘평화의 시대’로 불리는데, 이는 다름아닌 억압의 결과로 저자는 본다.

막부는 철저한 계급과 위계질서를 바탕으로 각 사회 구성원에게 세세하게 의무와 직무를 부여하고 모든 일탈행위를 제거, 처벌하는데 모든 통제 수단을 동원했다. 그 결과, 안정을 바탕으로 일본의 인구는 세 배로 늘고, 전근대 농업중심의 자급자족 경제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특히 다이묘들이 번걸아가며 에도에 머무는 참근교대제도는 전국을 연결하는 온갖 인프라를 만들어내게 된다. 전쟁이 사라지면서 겉으로는 지배층이었지만 할 일이 없어진 사무라이들에 의해 가부키, 우키요에, 하이쿠 등 예술이 꽃을 피운다. 막부는 그럼에도 잠재적 위험 존재인 사무라이들을 관료로 만듦으로써 뇌관을 제거하고 고도의 전문 행정체계를 만들어냈다.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 개개인의 강직함, 도덕적 또는 물질적 방종에 대한 경멸 같은 사무라이 스타일이 일본의 고분고분한 관료를 만들어내는 데 유용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일본의 가치관 분열과 모순은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구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한 메이지 유신에서 가속화한다. 특히 허수아비 천황제도와 의회제도 뒤에서 유신의 주역들이 과두정치를 펼친 결과, 이들이 죽으면서 남긴 권력의 공백은 이후 최종 책임 없는 관료에게 휘둘리는 일본 정치를 낳게 된다. 일본 조직의 근본적인 개혁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런 고질적인 최종 책임 소재가 없는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서양을 모델로 삼아 ‘일본적인 것’을 규정하려 했던 메이지 유신은 중국 대륙의 영향을 애써 지우려 했고, 서양 문화를 어설프게 소화함으로써 이후 아시아의 주변국과 서양 사이에서 일종의 정신분열 상태에 빠졌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저자가 본 ‘일본 문제’는 전후 미군정에도 책임이 돌아간다. 전후 처리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스스로 과오를 돌아볼 기회를 원천봉쇄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에 국방과 외교를 맡긴 대신 미국을 지렛대 삼아 경제를 일으키고, 미국은 일본의 경제력에 의존, 달러중심 세계경제를 유지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책은 일본을 역사나 경제, 문화 각각의 측면에서 다룬 기존의 일본서와 달리 일본의 변화를 막는 유령, 굴레에 초점을 맞춰 통합적 시각에서 통찰한 점이 돋보인다. 더욱이 일본경제의 눈부신 발전과 정체 혹은 쇠퇴의 원인도 이런 틀안에서 다룬 게 새롭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일본의 굴레/태가트 머피R. 지음, 운영수·박경환 옮김/글항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