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사과에도 원칙이 있다고 한다. 내용(Content)과 태도(Attitude), 시점(Timing)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라는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에 비춰본다면 사과는 정확해야 한다. 상대에게 닿지도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혼자서 크게 품어봐야 사과라고 할 수 없는 셈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최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올린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분명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임성근 부장판사 사의표명 전후 과정을 두고 불거진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과 정치권 의식 논란에 대한 입장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이 글에 언급된 ‘국민과 법원 가족 여러분’은 사과를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김 대법원장이 시도한 사과는 친절하지 않았다. 글이 게재된 코트넷은 법원 외부인의 접속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곳에 설령 정성스레 사과글을 올린다 한들 구전(口傳)되지 않고선 전해지지 않는다. 확인하고 알리는 일이 업무인 기자도 접속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점심시간대 법원 내부 사람들만 볼 수 있는 게시판에 글을 올려두고 자연스럽게 사과 뜻이 알려져 국민에게 닿을 것으로 생각했다면 사과하려는 사람의 방식으론 꽤나 안이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전 11시55분엔 국민에게 사과의 마음을 전달할 판사도, 법원 공무원도, 기자도 점심을 먹거나 먹을 준비를 한다.

앞서 대국민사과를 했던 윤관, 이용훈, 양승태 대법원장은 카메라 앞에서 사과문을 읽으며 고개를 숙였다. 과거 사안은 모두 사법부 내부 비리와 관련한 사과였기에 이번 사안과는 다르다. 하지만 정작 김 대법원장의 경우, 본인의 말과 행동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당사자라는 점에서 되레 더 직접적인 사과가 필요했다는 지적을 마냥 몽니로만 볼 순 없을 것이다.

‘법원 가족’의 입장에서도 김 대법원장의 사과가 흡족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인 듯하다. 일선 판사들은 “그저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한다. 김 대법원장이 글을 통해 해명했지만 정작 해소된 것은 없고 사과의 알맹이는 비어 있다는 것이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공개된 면담 녹취록엔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에게 ‘정치적 상황도 살펴야 된다’고 한 말이 나오는데 코트넷 글에선 그저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는 언급뿐”이라며 “명쾌하게 설명되는 게 없으니 해명도 설득력이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법원장은 보통의 공직자가 아니다. 대법관 제청, 법관 임명 같은 헌법적 권한과 사법행정사무를 지휘·감독하는 법률적 권한을 지닌 것은 물론 사법부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인물이다. 때문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담긴 신뢰의 무게는 어느 공직자보다 무거워야 한다. 논란이 된 자신의 행동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대법원장에게 사법개혁을 기대할 순 없는 노릇이다. 2017년 8월 대법원장 후보 지명 당시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던 그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