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연기 끝에 막 오른 무대

네 번째 시즌 맞은 조승우…탁월한 연기

‘이룰 수 없는 꿈’이 전하는 따뜻한 울림

‘맨 오브 라만차’ 조승우 [오디컴퍼니 제공]
‘맨 오브 라만차’ 조승우 [오디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누구나 ‘깨지 않는 꿈’을 꾸는 때가 있다. 허무맹랑한 이상을 향하고, 무모한 도전을 마다 않는다. 거대한 벽에 부딪혀도, 돌부리에 숱하게 채여도 주저 앉을 수 없을 때가 있다. 대답 없는 메아리 같은 꿈을 간직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누구나 안다. 꿈을 잊는 시기, 꿈을 잃어버리는 때는 언제든 온다. 시간의 길이가 증명하니, 저마다의 현실에 머무른다. 반쯤 미친, 반쯤 미쳐 있기를 자처한 노인이 있다. 그는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꿈조차 꾸기 힘든 시대, 꿈을 간직하기도 어려운 절망의 시대에 ‘맨 오브 라만차’(3월1일까지, 샤롯데씨어터)가 보내는 위로와 울림이 크다. 이들의 이야기는 꿈 꿀 수 없는 시대에 부르는 희망 찬가다.

깊고 어두운 스페인의 지하감옥. 이야기는 그곳에서 시작한다. 종교재판을 받기 위해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가 ‘라만차의 기사’로 변신할 시간. ‘이 미친 세상’을 꿈 하나에 의지해 달려가는 무모한 도전가이자 아름다운 망상가인 돈키호테가 돌아왔다. 무려 세 차례나 연기한 끝에 지난 2일 막을 올린 ‘맨 오브 라만차’는 올해로 아홉 번째 시즌을 맞았다. 2004년 ‘돈키호테’라는 제목으로 국립극장에서 막을 올릴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로선 상상도 못할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었지만”(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던 이 작품은 ‘명실상부’ 뮤지컬 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하고 있다.

‘맨 오브 라만차’는 스페인이 사랑하는 작가 세르반테스의 삶과 그의 소설 ‘돈키호테’를 엮은 브로드웨이 원작의 뮤지컬이다. 1965년 11월 미국 뉴욕 초연 이후 반세기를 사랑받은 비결은 유려하게 흐르는 탄탄한 스토리텔링에 있다. 작품은 지하감옥에 입성한 세르반테스가 자신이 쓴 희곡 ‘돈키호테’를 죄수들과 공연하는 극중극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뮤지컬이면서도 드라마의 비중이 높아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오가는 주연 배우의 연기력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조승우는 올해로 네 번째 시즌이다.

맨 오브 라만차 [오디컴퍼니 제공]
맨 오브 라만차 [오디컴퍼니 제공]

‘라만차의 기사’는 좀 우스꽝스럽다. 두 팔 벌린 거대한 풍차를 공격해야 할 거인으로 확신하고, 거리의 여인을 고귀한 존재로, 여관 주인을 영주님으로 받든다. 세상은 미치광이 노인을 조롱하지만, 우리의 돈키호테는 그의 길을 간다. 이 작품의 백미이자, 가장 큰 반전은 사람들의 변화다. “이 세상은 똥구덩이”이며 “우리는 꿈틀대는 구더기”라 말하던 ‘거리의 여인’ 알돈자는 자신을 고귀한 여인 ‘둘시네아’로 부르는 돈키호테로 인해 변화한다. 알돈자가 자신의 이름을 ‘둘시네아’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무리 뻔해도 누구나의 가슴에 한 줌 남아있던 ‘그 꿈’ 혹은 ‘희망’, ‘정의’의 불씨를 되살린다. 돈키호테는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유쾌한 안내자이자, 시궁창에 처박혀도 빛나는 별을 보게 해주는 길잡이다.

맨 오브 라만차 [오디컴퍼니 제공]
맨 오브 라만차 [오디컴퍼니 제공]

그럼에도 현실은 참혹하다. 돈키호테는 냉정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치료 요법) 앞에 서야 하고, 세르반테스는 종교재판으로 향해야 한다. 그들만의 세계(감옥)에서 부르짖는 꿈과 자유는, 길고 긴 계단 위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거세당한다. 현실로 나서야 하는 지하감옥 죄수의 절규는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몰상식이 상식이 된 사회를 향한 공포를 보여준다. 부딪히고 무너지니 다시 일어날 기력조차 남지 않은 그 순간, 노래는 다시 시작된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리라.”(‘이룰 수 없는 꿈’ 中) “우리는 모두 라만차의 기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