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

우리나라 예산 편성과 재정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기획재정부 정문이나 후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시위문구다. 예산 배정에서 탈락한 지역 사업 또는 각종 단체 이해관계자들이 정부세종청사에 몰려와 예산 반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면서 기재부를 압박하려고 동원하는 말이다. 특히 예산안 세부 심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매년 6~7월이면 기재부를 규탄하는 확성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시위와 기재부 규탄문구를 보면서 민원인들 손을 들어주기만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타당성이나 효과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사업에 대한 요구가 많기 때문이다. 예산을 배정받으려면 사업을 추진하는 각 부처와 지자체가 우선 치밀하게 검토해 예산 편성 권한을 갖고 있는 기재부에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각 부처와 지자체가 치밀한 검토 없이 예산을 요구한 다음 탈락하면 기재부가 반대해서 안 된다며 그 책임을 떠넘겨 민원인들이 기재부로 몰려오는 경우도 많다.

또 하나는 민원인들이 기재부로 몰려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기재부가 그만큼 재정관리, 이른바 나라 곳간지기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시급한 사업과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사업을 구분해 한정된 재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에서 지역 숙원사업이 탈락하기도 한다. 기재부가 각 부처와 지자체, 사업 추진단체 등의 압력에 굴하지 않을수록 민원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이 세계 최고인 것도 기재부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정세균 총리가 기재부를 향해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며 강하게 질책해 충격을 줬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영업 제한 등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과 소상공인의 손해를 보상하는 법제화 방안에 미온적인 기재부를 다그치며 한 말이다. 코로나로 도탄에 빠진 민생을 챙기려는 총리의 충심과 절박성은 이해가지만 내각을 통괄하는 총리로서 적절한 발언이었는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기재부에도 문제가 많다. 수십년째 부처별·부문별 칸막이를 유지하면서 한도를 정해 예산을 편성함으로써 재정운용의 경직성이 심각하다.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위기, 심각한 양극화,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있지만 예산 편성의 골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제구조 개혁을 외치지만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해마다 예산안 심사 때 유력 정치인들의 민원성 쪽지예산이 대거 반영되는 것을 보면 기재부의 예산 편성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때도 많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재정관리 중책을 맡은 부처이며, 이를 위해 민원인들의 규탄을 감수해왔고 정치권과도 일정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라는 항의와 질책에는 재정관리라는 기재부 고유 역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 있다. 민원인이나 정치인들은 기재부를 압박하기 위해 이보다 더한 표현까지 동원하지만 총리까지 기재부 고유 역할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은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 더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