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이 낀 팔자라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돌아보니 추억을 묻어 놓은 도시가 방방곡곡에 널려 있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운명인 듯하다. 가만히 사무실에 앉아서 상담하고 서면을 작성하는 것이 변호사 업무의 전부가 아니다. 수시로 전국의 법정을 찾아다니며 소송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의뢰인의 요청에 가방 하나 들고 낯선 외국을 떠돈다.

대한변호사협회장 역시 쉴 틈 없이 국내외를 돌아다닌다.

대한변협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져서인지 많은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외국 변호사단체와 교류를 한다. 시간을 아끼려고 주말 밤 비행기를 많이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최근 몇 년간 한 달에 한 번 이상 주말 밤에는 비행기에서 잠을 잤다. 남들은 장거리 비행이 피곤하다고 하지만 몇 시간씩 휴대전화가 불통되는 타율적 휴식이 내심 좋았다. 차분하게 생각도 하고, 잠도 실컷 자고, 보고 싶던 영화와 책도 본다.

그런데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연말까지 계획됐던 모든 국제 일정이 취소되거나 기약 없이 연기됐다. ‘역마살 사주’에게 코로나19는 저주와도 같다. 헌법상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지만 코로나19 앞에서는 사문화된 듯하다.

한동안 집과 사무실만 오가다가 한 달 전쯤 너무 갑갑해서 우연히 알게 된 전남 앞바다로 섬여행을 떠났다. 한적함이 주는 여유와 일상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에 행복했다. 번번이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은 열심히 산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맛있는 음식은 먹을 때 즐겁고, 명품은 버릴 때까지 설레지만 여행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추억으로 포장돼 영원히 가슴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국내 여행사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해외는 어쩔 수 없지만 국내 여행은 얼마든지 ‘거리두기’를 하면서 다녀올 수 있다. 한적한 곳으로 가거나 시차를 두고 분산해 휴가를 떠나면 된다.

지난 주말 코로나19로 두 차례나 연기된 끝에 개최된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 참석차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역부터 해운대 앞바다까지 온통 외국인들이었다. ‘자가격리 때문에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이처럼 많은 외국인이 모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금세 해소됐다. 주한미군과 그 가족들이 여름휴가지로 해외 대신 국내를 선택한 것이다.

휴가는 직장인에게는 업무와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의 짐을 내려놓고 더 멀리 가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고, 가족에게는 정을 나누고 소통하면서 가족애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아무리 코로나19가 우리의 일상을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우리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소중한 시간이 되는 휴가마저 뺏을 수는 없다. 현실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처럼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속에서 처음 맞는 올여름 휴가에도 차선책은 있다. 외국보다 우수한 방역 체계를 자랑하는 국내로 떠나는 것이다. 방역 수칙을 지키며 떠나는 국내 휴가는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여행업계와 관광지의 경제를 살릴 것이다. 국내의 숨어 있는 아름다운 관광지를 개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정말 아름다운 국토에서 살고 있는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궁즉통(窮則通)이다.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