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0조 기금 7개 업종 지원

기업, 주거래은행과 협의후 신청

은행들, 잠재부실 차주 선별 작업

국내 시중은행들이 거래 기업 가운데 기간산업안정기금(기간기금)의 지원을 받을 곳을 추리는 작업에 돌입했다. 주채권은행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들 가운데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부실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 우선적인 대상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금 지원 조건이 까다로울 기간기금의 지원을 받는 것이 불편하지만, 은행들은 추가 신용공여 부담을 덜 수 있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계열 가운데 4대 은행이 주채권은행으로 있는 기업은 총 20곳이다. 우리은행이 9개, 하나은행 5개, 신한은행 4개, 국민은행 2개다.

금융위원회는 전날 40조원의 기간기금 조성을 발표하며 항공·해운·자동차·조선·기계·전력·통신 등 7개 업종을 지원 대상으로 꼽았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원 대상 기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간기금 지원을 희망하는 기업은 주채권은행과 협의 후 신청하는 절차를 밟는다.

은행들은 주채권은행 자격을 갖고 있는 기업들을 업종별로 구분해 기간기금을 신청할 필요가 있는 대상기업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대출의 만기가 도래해 신규 대출이 필요한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대기업 여신에 현재 시점에서는 특별한 위험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익스포져 현황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며 “이번 기간기금과 관련해 (기존 거래 기업과) 긴밀한 논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이번 기간기금이 달갑지만은 않다. 5년간 한시적으로 운용되는 기간기금의 지원을 받기 위해 지켜야할 전제조건이 까다롭다. 고용안정, 도덕적해이 방지, 정상화 이익 공유 등과 같은 전제조건을 이행해야 한다. 대기업 지원에 대한 특혜 논란을 피하기 위한 장치로 풀이된다.

현재 고용안정 조건은 6개월간 일정 비율 이상의 고용충량 유지가 예시로 제시됐다. 조건을 위반하면 가산금리 부과, 지원자금 감축·회수 등의 벌칙이 부과된다. 아울러 자금 지원 방식 중 향후 주식으로 바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환사채 등을 정부가 보유하는 것에 대한 우려감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기간기금의 전제조건을 보면 대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신청하지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며 “자금을 지원하는 정부가 채권자가 되는 것인데 발표한대로 실행되면 채권자가 경영권까지 영향을 미치는 과도한 권한을 갖는 셈”이라고 말했다.

반면 은행 입장에서는 이번 기회에 한계기업을 털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40조원의 기금을 마련하는데 사실상 은행들의 부담은 없다. 이번 기금 재원은 국가보증 기금채권을 발행해 조달할 예정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기간기금 재원을 정부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 자금 부담이 없다”며 “부실 가능성이 높아진 기업을 기간기금으로 넘기면 은행 입장에서 건전성 관리 부담을 더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승환·박준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