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면책 내세워 지원 독려
과거정부때 ‘학습효과’로 머뭇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코로나 면책’을,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검사 예외’ 카드를 꺼내들었으나 시중 은행들은 도통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당국이 금융지주 회장들을 거의 매일 불러 ‘돈을 풀으라’ 얘기하고 행장들을 만나 ‘함께 쓰는 우산이 되자’고 독려해도 마찬가지다. 당국의 위세도 무섭지만, 그보다는 은행의 건전성을 지키는 것이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은 위원장은 19일 오전 금융위 대회의실에서 금융시장점검회의를 열었다. 은 위원장은 3월 초 5대 금융지주 회장을 불러 ‘피해 지원에 직접 나서달라. 코로나 대출은 면책’이라 강조하기도 했다.
윤 원장 역시 시중 은행장들을 만나 ‘비올 때 우산을 함께 써야 한다’며 기존 대출의 연장과 신규 대출에 속도를 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럼에도 두 달 걸리던 보증 심사 기간은 여전히 그대로고 낮은 이율로 돈을 빌릴 수 있는 정책자금 대출로 사람이 몰려 또다른 대출 병목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은행들이 좀처럼 ‘대출 빗장’을 열지 않고 있는 이유는 과거 경험 때문이란 목소리가 은행권에선 나온다. 이전 정부에서도 정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었는데 결국에는 은행들만 되레 당했던 전례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때엔 녹색상품을, 박근혜 정부 때엔 통일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라는 지시가 있어 이를 그대로 시행했었다”며 “그러나 결국 정권이 바뀌고 상품들이 부실해지자 은행들이 그 비난을 감수해야 했었다”고 말했다.
당국의 ‘코로나 면책’에 대해서도 은행 자체 평가가 더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당국 평가는 후순위다. 당행 평가가 더 우선인게 현실”이라 했다.
오랜 기간 동안 쌓았던 ‘리스크 외부화’ 업무 원칙도 또다른 원인이다.
은행 관계자는 “재단이나 기금에서 보증만 받아오면 신청 당일에라도 대출이 나갈 수 있다. 보증이 성립됐다는 것은 리스크가 대폭 줄었다는 의미”라며 “대출 문제가 숱하게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행장이라 하더라도 지점장에 ‘대출을 해주라’고 요청 못한다. 대출 시스템이 그같은 지시를 이행할 수 없게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금융사들을 통한 중기·소상공인 지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위기가 단순 금융위기가 아니라 전체 실물 경제의 위기기 때문에 필요한 곳에 돈을 직접 꽂아주는 방식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란 설명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화폐우(貨幣雨)’를 뿌려야 한다. 단기에 효과를 내려면 사용 기한을 3개월로 정한 상품권을 국민들에게 직접 나눠주는 방식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석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