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김태호·정태옥 무소속 출마 선언때 공통 멘트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문석균 씨도 “반드시 살아서…”
이해찬대표도 4년전 탈당때 “정권교체 위해 돌아올것”
정가 해석은 “무엇보다 당 배신자 프레임 갇힐까 우려”
“후일 도모키 위해 일단 본인이 희생양됐다는 것 부각”
당에 대한 로열티 포기 안해야 당 복귀 가능성도 커져
“반드시 살아 돌아오겠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굳은 맹세가 아니다. ‘죽음의 조’에 낀 월드컵 태극전사들의 사생결단의 출사표는 더더욱 아니다. 요즘 정치인들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탈당 후 무소속 출마 열차를 탄 이들에게서 자주 들리는 발언이다. 진정성과 그 실행 가능성은 둘째치고라고, 배수진성의 결기는 확연히 느껴진다.
최근 4·15 총선을 앞두고 공천탈락한 후 탈당을 감행하고,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한 이들을 보면 한결같이 이런 ‘구호’을 내건 것이 공통점이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경남 양산을 컷오프(공천배제)로 양산행 본선티켓을 놓친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미래통합당 탈당과 무소속 출마 선언을 앞두고 지난 14일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홍 전 대표는 “반드시 살아 돌아가 야당성을 회복하는 강인한 야당을 다시 만들고 정권교체의 선봉장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그 누구라도 끌어안고 선거에 임하겠다”고 했다. 이후 그는 대구 수성을 지역의 대표적 명소인 수성못 둔치에 세워진 이상화 시인의 시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현 문재인 정권에 대한 대구 사람들의 마음이다”는 글을 또 페이스북에 올렸다. 수성을 지역에서의 출마를 선언한 것이자, 수성을 유권자들을 대신해 정권을 심판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김태호 전 경남지사는 지난 8일 페이스북을 통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당을 잠시 떠납니다. 한번도 떠나 본적이 없는 친정집을 잠시 떠납니다. ‘꼭’ 살아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꼭’이라는 단어에 홑따옴표를 붙임으로써 생존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앞서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는 김 전 지사가 공천을 신청한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지역을 ‘경선지역’으로 지정하면서 그를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컷오프 당한 것이다. 그는 “당 공관위에서 참 나쁜 결정을 내렸다. ‘큰 정치인은 고향발전을 위해서 일할 수 없다’는 무슨 해괴망측한 논리인가”라며 당의 험지 출마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데 따른 보복성 컷오프라고 주장했다.
대구 북구갑 공천에서 탈락한 정태옥 미래통합당 의원의 무소속 출마 출사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정 의원은 지난 18일 미래통합당 대구시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소속 출마 선언을 하면서 “반드시 살아서 당에 돌아오겠다”고 했다. 그는 “대변인과 정책위 부의장으로 당을 위해 헌신했고 패스트트랙 대치 과정에서 정식 기소될 정도로 보수와 자유민주주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져 투쟁했다”며 “그런데 (공관위가) 당헌과 규규를 무시하고 지역 연고도 없는 서울 TK(대구·경북) 인사를 내리꽂은 것에 당원과 주민이 울분을 토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2018년 6·13 지방선거 직전 ‘이부망천’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것이 공천탈락의 한 이유라는 정치권의 시각도 있지만, 그는 매우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어쨌든 위 사례에서 보듯이 홍 전 대표나 김 전 지사, 정 의원 모두의 말을 종합해보면 “잠시 당을 떠날 뿐이고 선거에서 승리한 후 당당히 당에 복귀하겠다”는 공통분모의 발언이 깔려 있다.
야당만이 아니다. 여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문희상 국회의장 아들 문석균 씨는 4·15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경기 의정부갑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는데, 그 역시 ‘떳떳한 복귀’를 강조했다. 문 씨는 17일 의정부시청에서의 기자회견을 통해 “당당하게 제21대 총선 출마를 선언하며 의정부 시민의 품속에서 자란 ‘진정한 의정부 사람 문석균’으로 총선에 나서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살아서 의정부시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생존 후 당 복귀’라는 말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한 차성수 전 금천구청장의 무소속 출사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구청장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수석비서관으로 살아온 제 삶, 한 몸 내던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탈당 후 무소속 출마는 ‘험한 길’이 될 것이며 숱한 오해와 비난도 받을 것”이라며 “하지만 견뎌낼 것”이라고 했다. 총선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본인 입장으로선 절박해 보이는 이 메시지들을 들여다보면 한가지 물음표가 생긴다. 왜 정치인들은 ‘탈당→무소속 출마’의 변을 내놓을때 “꼭 살아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일까. 어찌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가의 해석은 좀더 구체적이다. 공천에서는 탈락했지만 당을 적대시하는 것은 후일도모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것을 무소속 출마자들이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자신의 당심(黨心), 즉 당에 대한 로열티는 충만한데 공천 결정자 몇사람이 본인을 희생양 삼았고, 이에 어쩔 수 없이 탈당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를 강조하기 위해 그런 절박한 메시지를 내보낸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탈당을 하는 것 까지는 그렇다고 해도 당에 대한 배신자 프레임에 갇히면 훗날은 없다는 것을 무소속 출마자들도 잘 알고 있는 것”이라며 “그래서 당 공천위에 대한 비판은 날리더라도 당에 대한 애정은 그토록 강조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자유한국당 대표까지 지낸 홍준표 전 대표는 수성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와 김형오 전 공관위원장에 대해 ‘협잡 공천’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면서도 당원들에 대한 애정은 무한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차 전 구청장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도 “민주당을 저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의 정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라고 한 것도, 공천탈락한 민병두 민주당 의원이 지난 16일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사회자가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준비하는 심경을 묻자 “저에게 네 번의 기회를 준, 제가 무엇보다 사랑하고 정치적으로 부모와 같은 민주당을 잠시 떠나게 된다는 것이 굉장히 착잡한 심정”이라고 한 것은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치권 다른 관계자는 “당의 헤게모니 싸움에 밀려 설령 공천을 받지 못하면 무소속행(行)이라도 해서 재기의 기회가 있지만 당의 배신자 프레임에 걸리면 정치 생명이 끝난다는 점에서 무소속 출마자들의 변은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명분없이 탈당해서 표를 갈라놓는 배신행위의 ‘철새 이미지’가 생기는 것을 가장 경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몸은 비록 떠나지만, 마음은 당에 있기에 절대로 배신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고 무소속 당선 후 ‘금의환향’을 노리는 것이 무소속 출마자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이번 총선에서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후보는 영구제명하는, 즉 당의 복귀를 허용하지 않는 이른바 ‘이해찬 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와 관련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탈당→무소속 출마→당선→컴백’의 일부 관행적 패턴을 근절해야 탈당불복 사례가 줄어들 수 있다고 이 대표가 여긴다는 것이다. 정가에선 서울 동대문을 현역인 민 의원과 충북 청주서원 현역인 오제세 의원, 차 전 구청장의 공천탈락 반발과 그 후유증이 민주당 내 총선 위기감으로 번지고 있다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이 대표의 고육책으로 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대표는 정작 자신이 추진하려는 ‘이해찬 금지법’에 반하는 행동을 했었던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한 바 있다. 이 대표는 당시 “(나에 대한) 공천 배제 발표는 이유와 근거가 없다”며 크게 반발했고, 3월 15일 탈당과 함께 세종시에서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리곤 당선이 됐고, 6개월만에 민주당에 복귀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이 대표가 탈당을 하면서 낸 성명서엔 이번 총선에서의 무소속 출마자들과 유사한 배수진성 멘트가 담겨 있다. 그는 “세종시 완성과 정권교체를 위해 돌아오겠다”고 했다.
정치는 역시 데자뷔인가. 4년전 “돌아오겠다”는 무소속 출사표를 던지며 결국 컴백에 성공한 이 대표의 길을 이번 4·15 무소속행 열차에 탑승한 많은 이들이 따라 걷고 있다.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