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해숙 화가
오랜 교육자 생활을 마감하기 전까지 작가 최해숙이 추구했던 회화의 세계는 자연에 대한 성찰과 그것에 관한 근원적 사유였다. 그것이 자연으로부터 나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혹은 우주로부터 나와 우주로 돌아가는 인간 근원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지기 전까지 작품의 화면은 주로 자연을 해체하고 이를 재구성하는 식의 초기입체파와 같은 분석적 회화양식으로 발현되어 왔다.
작가는 예순을 이미 넘기고 칠순으로 지나가는 세월의 허리께에서 2001년 3회 개인전 카탈로그에 당시를 회고하는 심정으로 ‘육갑(六甲)을 털었다’는 표현을 썼다. 노인의 세월로 접어드는 육십갑자를 넘어서는 이들이 보여주는 겸손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작가 최해숙은 이러한 세계 앞의 초라한 육신인 인간의 존재를 끝내 인정하고 우주 앞에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내기로 결단한다. 3회 개인전의 테마인 십이지(十二支)는 그런 면에서 10간 보다는 미미한 세월의 층, 즉 일상으로부터 지속되는 현재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2004년 개인전에서는 <열림소리>를 그 주제로 삼고, ‘원’의 형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가의 매우 추상적인 의지가 발현된 작명으로 이 땅에 한 삶의 주체로 태어나 성장했고, 이제 쌓인 연륜을 인생의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을 걷고 있는 한 원로화가의 인생노정과 닮아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인생관을 조망하는 작가의 세계관은 이제 ‘천부경’에 와 있다. 화면의 형식적인 구성으로는 윷판의 본래 형태인 원형이나 현대에 들어 변모된 형태인 사각형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삼극의 개별 요소들이 각자의 위치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윷판을 구성하는 29개의 점이 달의 공전주기를 나타내면서 우주의 생성원리를 상징화시켜 보여주듯이 그의 화폭에는 윷판 구조의 철학이 천부경 사상을 드러내는 한자들의 조합과 함께 어우러져 우주의 생성소멸의 이치를 상징화시켜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