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ㆍ정부, 한일갈등을 상대 행동에 따라 유연히 대응하는 ‘전략대결’로 규정

-광복절부터 일왕즉위식 까지 향후 3개월 정치일정 모두 변곡점 될듯

-‘화이트국 배제’ 최악 시나리오 기본에 두고 ‘낙관도 비관도 금물’

8·15→日개각→일왕 즉위식…한일 ‘전략 대결’ 승패 가를 3대 분수령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27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정권 규탄 2차 촛불문화제’에서 시민들이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두고 한일 양국 정부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맞붙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 주요 언론도 일제히 이 사실을 전했다. 국내 보도에선 찾기 힘든,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일본 언론들은 회의에서 한일 양국을 뺀 나머지 제3국의 발언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니혼게이자이는 25일자 기사에서 “한국은 규제 철회를 요구하며 국제여론에 호소했으나 한일 양국 외 참석국들 발언은 없었다”고 했다. 요미우리 신문도 같은날 제네바발(發)기사에 똑같은 문장을 넣고 이 부분에 주목했다. 일본 측 조치가 부당하다며 한국이 국제여론에 호소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는 것과 나아가 일본 조치에 특별한 ‘부당함’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한 프레임이다. 한일 간 ‘무역전쟁’으로도 불리는 이번 사태 속에서 일본이 어떤 전략을 갖고 움직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 측 선공(先攻)으로 격화한 한일갈등이 이같은 일련의 ‘전략 대결’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점에 주목하는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어느덧 5주째 접어든 이 대결을 관통하는 흐름은 유동성이다. 엄연히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상대방 움직임은 고정적이지 않다. 우리 측 대응에 따라 언제나 변할 준비가 돼 있다. 향후 양국간 전략대결 승패를 가를 일정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분수령이자 변수다. 정부는 최악의 시나리오 또한 대비하고 있다

▶한일갈등 양상, 전략대결이자 반복게임=실제 일본은 지난 1일 대(對)한국 수출규제 발표 후 수시로 한국에 대한 발언 프레임을 바꿔왔다. 처음엔 우리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신뢰손상으로, 나중엔 대북제재의 한국 측 시스템에 헛점이 보인다는 식이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지난 16일 “1일 (일본의) 발표 후 2일·4일·7일 일본 측 언급만 봐도 그렇다”며 “아베 총리 발언, 자민당(집권여당) 간사장 대행의 발언, 스가 관방장관의 발언들이 한 가지로 주장되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쉽게) 확인 가능하다”고 했다. 일본 측 논리가 우리 반응과 맞춰 상황에 따라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정부는 나아가 이번 갈등을 ‘반복되는 게임’으로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상대 행동에 따라 우리 대응방침을 지속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위해 지난 5주 간 청와대와 정부는 가장 먼저 우리 측 소재·부품·장비산업 현황파악에 주력했다. 품목·기업별 상세한 현장확인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단계는 단기적 피해 최소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다. 러시아산 불화수소 도입 검토 등이 이러한 맥락에서 진행됐다. 또 하나는 패러다임 전환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맡은 부서 직원들에게 “서랍 속 옛날 정책을 꺼내 재탕 삼탕하는 ‘표지갈이식’ 조합 대신, 발상의 전환을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과거 수직계열화 체계에서 벗어나 21세기 무역환경에 맞는 개방형 생태계를 고려한 경쟁력 향상방안을 강하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같은 사전 작업에 기초해 다양한 전략적 카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결 일정, 향후 이어질 ‘3대 변곡점’=정부는 이외에도 중장기적으로 일본 경제보복 사태에 영향을 줄 정치 일정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에 주목 중이다.

우선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 맞이할 8·15 광복절이 첫 고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일본에 어떤 메시지를 발신하느냐에 따라 이후 국면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개각 역시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참의원 선거를 치른 아베 총리는 9월 중 개각 및 여당인 자민당 지도부 개편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본 정부와 여당에 어떤 인사들이 포진하느냐에 따라 수출규제 사태 장기화 여부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와 정부는 10월 22일로 예정된 일왕 즉위식 일정도 눈여겨 보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반세기 만에 맞는 가장 중요한 정치 일정인 만큼, 한일관계를 풀어갈 계기가 마련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곳곳에서 나온다. 이와 관련,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는 최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나 “10월 일왕 즉위 전까지 (한국이) 특사를 파견해야 한국도 축하 사절단을 보낼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 ‘백색국가 배제’ 최악 상황 대비도=향후 3개월 시점까지 내다보고 있는 우리 정부 시나리오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변수는 역시 ‘화이트 리스트’ 배제 여부다. 일본 정부는 현재 수출허가 간소화 대상인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빼기 위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니혼게이자이는 지난 24일 마감된 이 법령개정 관련 의견 공모에 4만건 이상이 접수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25일 알려진 3만건보다 1만건이 늘었다. 이 언론은 절차대로 진행될 경우 한국이 8월 하순부터 화이트리스트에서 공식적으로 배제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핵심은 일본 정부의 이같은 조치가 현실화하는 ‘정확한 시점’과 그에따른 파장이다. 현재 일본 정부 절차에 따르면 의견서를 살펴보는 ‘숙려기간’을 최대 14일까지 두게 돼 있다. 이번 사례처럼 의견서가 많이 접수됐을 경우에는 더 길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우리 정부에선 실제 통계를 근거로 숙려기간이 14일을 넘어 30일까지 걸릴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상황이 유동적인 만큼 청와대와 정부는 현실화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이 일본의 백색국가 리스트서 빠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 정부는 ‘지금 상황을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고 발생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상정해 대비 중’이란 입장을 계속 유지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