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주권 행사로 총수 물러난 첫 사례
[헤럴드경제=정찬수 기자]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이 그룹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게 됐다. 주주 손에 물러나는 첫 총수다.
국민연금과 해외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하면서 그룹의 미래전략은 안갯속으로 빠지게 됐다.
대한항공은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 5층 강당에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관심이 집중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게 됐다.
예견된 결과였다.
앞서 세계 최대 의결자문사 ISS와 국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와 좋은기업지배연구소 모두 조 회장의 여러 위법 혐의를 지적하며 반대표 행사를 권고했다. 여기에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위임을 독려하며 세 규합에 나섰다.
전날 열린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의 입장 발표가 결정적이었다.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한 국민연금은 주주권행사 분권위원회를 열고 진통 끝에 반대표를 행사키로 했다. 수탁위는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지침)를 도입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자문기구다. 이들은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내렸다”며 조 회장의 연임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사내주주인 직원들에게 찬성 위임장을 독려하고 일부 주주 자택과 직장을 찾아가 위임장을 부탁했던 사측의 노력도 물거품이 됐다.
대한항공은 전날 입장자료를 통해 “국민연금의 사전 의결권 표명은 위탁운용사, 기관투자자, 일반주주들에게 암묵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며 “장기적인 주주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당장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 총회부터 2023년까지 별도기준 매출액 16조2000억원, 영업이익 1조72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한 중장기 비전도 차질을 빚게 됐다. 델타 조인트벤처를 통한 미주-아시아 네트워크 확대와 동남아 중장거리 신규 노선 확대 등 미래전략의 구심점에 조 회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직의 체질 개선에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회사의 성장성 측면에선 부정적이다. 기업가치에서 주주 몫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당기순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대한항공의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이 결여된 상황에서 대한항공 같은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계속될 경우 기업들에게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스튜어드십 코드의 첫 사례로 꼽히는 이번 결과에 따라 항공업계의 후폭풍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 주총에서 연결제무제표 승인과 정관 일부 변경안의 건이 원안대로 통과되자 일부 주주들은 반대 의견이 수렴되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소동도 일어났다.
andy@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