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문서 “재벌, 사회병리 현상…정치인 포획ㆍ언론 장악” 표현 실제 해외 강연서 수위 낮추는 모습…예정에 없던 발언 쏟아내 그럼에도 재벌 비난 발언 대부분 차지…전문가들 “시대 착오적 생각” 지적

[헤럴드경제(베오그라드)=정경수 기자] “나는 재벌을 좋아한다. 재벌은 한국 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2일(현지시각)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국제경쟁정책워크숍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11일 사전 발표문이 공개되고, 재벌에 대한 인식이 논란이 되자 김 위원장은 이처럼 예정에 없던 발언들을 내놨다. 논란을 의식한 듯 발언 수위는 사전 발표문보다 낮아졌고, 재벌을 높이사는 말도 했다.

김 위원장은 “1960년대부터 한국은 정부 주도의 수출중심 경제성장전략을 추구했다”며 “이 전략은 한국경제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과거 재벌 중심의 성장전략이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의 주요 요소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단 몇 줄뿐이었다. 곧이어 평소 소신대로 재벌에 대한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재벌들은 국내시장에서 막대한 경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며 “이는 경제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정치와 종교, 언론,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 사회는 경제력 집중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정위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순환 출자 구조도 짚었다. 김 위원장은 “재벌들은 5% 내외에 불과한 지분을 갖고 있다”며 “한국에서 이들은 ‘오너’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소수주주’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피라미딩 출자구조를 이용해 재벌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며 “일감 몰아주기 등 다른 주주와 기업들의 이익을 저해할 수 있는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도 털어놨다. 김 위원장은 “경쟁당국은 많은 적들에게 둘러 쌓여있다”며 “기업집단은 물론이고 다른 정부 부처들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밀로에 오브라도비치 세르비아 경쟁보호위원장을 향해 “(외로운 싸움을 하는) 우리는 모두 친구이다”라고 말을 하자 관중석에선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뒤늦게 논란 수습에 나섰지만 김 위원장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세다. 해외에서까지 근거 없는 논리로 국내 기업을 비난하냐는 비판이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재벌을 개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사고”라며 “기업을 기업단위가 아닌 오너 단위로 관리하는 것은 세계 유일 규제”라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는 대우조선해양, KT 등을 예로 들면서 “오히려 오너 없는 기업들이 횡령 사건에 휘말리고,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IMF 때도 오너 없는 기업들은 큰 어려움에 빠졌고, 포스코와 KT 같이 기업들은 정권에 휘둘리는 부작용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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