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 가속보다 ‘묵직한 여유’
급감속에도 차체 움직임 억제
정숙성·안정감에 ‘하차감’까지
올해 1~8월 GLE 4633대 등록
수입 대형 SUV 스테디셀러
성인 3명·아이 타도 여유로운 2열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문을 닫는 순간부터 ‘프리미엄 SUV’라는 말이 실감났다. 2톤이 넘는 차체는 가속할 때도, 속도를 줄일 때도 흐트러짐 없이 묵직하고 부드럽게 움직였다. 힘을 과시하기보다 여유 있게 끌고 가는 주행감, 그리고 가족을 태웠을 때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정숙성과 안정감. 메르세데스-벤츠 GLE 450은 빠름보다 ‘편안한 품격’에 더 가까운 차였다.
지난 24일 벤츠의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LE 450 4MATIC AMG 라인을 타고 서울에서 경기 용인까지 왕복 약 100㎞를 달렸다. 아내와 아이, 부모님까지 함께한 이번 시승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최고출력 381마력이라는 숫자보다 ‘편안함’이다. 넉넉한 2열 공간과 정숙한 실내, 흔들림을 억제한 승차감은 운전자뿐 아니라 동승자에게도 부담이 적었다.
시승차는 GLE 450 라인을 기반으로 지난해 국내 77대 한정 판매된 ‘나이트 에디션’이다. 현재 판매되는 일반 모델과 엔진·변속기 등 핵심 주행 사양은 같지만, 옵시디안 블랙 외장 색상을 비롯해 다크 크롬 도어 핸들, 블랙 사이드미러, 22인치 AMG 블랙 휠 등을 더해 외관을 검은색으로 통일했다. 일반 모델에는 21인치 AMG 멀티 스포크 휠이 적용된다.
몸집은 전장 4930㎜, 전폭 2020㎜, 전고 1780㎜에 휠베이스는 2995㎜다. 경쟁 모델인 BMW X5와는 전장·전폭이 거의 비슷하고, 제네시스 GV80과 비교해도 길이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전폭은 GV80보다 약 45㎜ 넓어 좁은 주차장에서는 차체 크기가 적잖이 의식된다. 반면 긴 휠베이스와 차체 끝부분까지 뻗은 바퀴 배치가 GLE 특유의 안정적인 비율을 만든다. AMG 라인 전용 범퍼와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더해지면서 화려하다기보다 묵직한 인상이 강하다.
이 차에서 이른바 ‘하차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검은색 차체와 커다란 삼각별 엠블럼, 22인치 휠이 만들어내는 존재감은 주차를 마친 뒤에도 이어졌다. 가족과 함께 움직이는 차라는 점을 고려하면 단순히 운전자가 즐기는 자동차를 넘어, 동승자까지 프리미엄 브랜드를 탄다는 만족감을 준다.
운전석에 앉으면 외관과 달리 화려함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두 개의 12.3인치 디스플레이가 나란히 놓였고, 센터 콘솔에는 SUV의 성격을 강조하는 손잡이가 자리 잡았다. 64가지 색상을 지원하는 앰비언트 라이트도 갖췄다. 운전자 시야 앞쪽에는 대형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주요 주행 정보를 띄워 시선을 크게 옮기지 않아도 속도와 길 안내를 확인할 수 있다.
공간은 지금까지 타 본 패밀리 SUV 가운데 가장 만족스러웠다. 뒷좌석에 성인 3명과 4살 아이가 함께 앉았지만, 넉넉한 2열 공간 덕분에 편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무릎 공간도 여유가 있어 장거리 이동에서도 부담이 적었다. 넓은 파노라믹 선루프는 뒷좌석의 개방감을 더했다. 트렁크 쪽 버튼으로 2열 시트를 손쉽게 접을 수 있고, 2열 헤드레스트 조작도 어렵지 않아 여러 명이 탑승하거나 짐을 실을 때 편리했다.
주행 성능을 살펴보면, 3.0리터 직렬 6기통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381마력, 최대토크 51㎏·m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5.6초면 도달할 정도로 힘은 충분하지만, 실제 주행에서는 강하게 치고 나가기보다 큰 차체를 부드럽고 묵직하게 끌고 가는 느낌이 강했다. 출발하거나 속도를 높일 때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전기모터가 힘을 보태 매끄러운 가속을 돕는다.
가속페달을 밟았을 때 등을 강하게 떠미는 방식보다는 육중한 차체를 묵직하게 끌고 나가는 느낌에 가깝다. 속도가 붙은 뒤 다시 가속페달을 밟아도 힘이 모자란다는 느낌 없이 여유롭게 속도를 높였다.
특히, 정숙성이 인상적이다. 저속으로 움직일 때는 순간적으로 ‘전기차를 타고 있나’ 싶을 정도로 엔진의 존재감이 희미했다. 신호 대기 후 출발하는 과정에서도 엔진이 깨어나는 진동이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전기모터가 출발과 가속 때 힘을 보태고, 9단 자동변속기는 상황에 맞춰 부드럽게 기어를 바꿨다. 덕분에 실제 주행에서도 움직임이 매끄럽고 자연스러웠다.
승차감에서는 에어매틱(AIRMATIC) 에어 서스펜션의 역할이 컸다. 댐핑 조절 시스템이 노면과 속도, 차량 하중에 맞춰 서스펜션을 조절하고 각 바퀴를 개별 제어하는 구조다. 고속 주행이나 스포츠 주행모드에서는 차체 높이도 낮춰 안정성을 높인다.
서울 도심의 요철과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 충격을 무조건 푹신하게 흘려보내기보다 한 차례 받아낸 뒤 차체 움직임을 빠르게 정리했다. 가족이 함께 탄 상태에서도 뒤쪽이 크게 출렁거리는 느낌이 적었다. 급하게 속도를 줄이는 상황에서도 인상은 비슷했다. 브레이크 페달 자체에는 차체 무게가 느껴졌지만 제동 과정은 부드러웠고, 강하게 감속해도 탑승자의 몸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주행 보조 기능은 복잡하지 않다. 스티어링휠 버튼으로 앞차와의 거리를 바로 조절할 수 있었고, 주행 중에는 설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속도를 알아서 줄였다 높였다. 기능 자체가 눈에 띈다기보다 장거리 운전에서 부담을 덜어주는 쪽에 가깝다.
GLE의 이런 성격은 국내 판매량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GLE와 메르세데스-AMG GLE는 지난해 국내에서 총 6960대가 등록돼 BMW X5·X5 M(6246대)을 앞섰다. 올해 1~8월에도 GLE 계열은 4633대로 X5 계열(4545대)보다 88대 많았다. 출시된 지 시간이 적잖이 지난 모델임에도 수입 대형 SUV 시장에서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가격 부담은 크다. GLE 450 4MATIC AMG 라인의 소비자가는 1억3900만원이다. 이번 시승에서 기록한 연비도 리터당 8.1㎞ 수준으로, 유지비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GLE가 오랫동안 벤츠의 대표 SUV로 자리 잡은 이유는 분명했다. 타고 있는 동안에는 편안하게 감싸는 승차감과 안정감이, 차에서 내린 뒤에는 프리미엄 SUV 특유의 존재감이 남았다. 가족을 태워도 크게 흐트러지지 않는 묵직함까지 더해지면서, GLE가 수입 대형 SUV 시장의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선택받는 이유를 체감할 수 있었다.
kwater@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