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적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기쁘다”와 같은 말 대신 방방 뛰는 이모티콘으로 감정표현을 대신하고, 직접 나서는 대신 액자형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대리만족 한다. 심지어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통해 ‘대신 찌질한 페이지’ ‘대신 욕해주는 페이지’ 등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직접 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짚어보고, 감정대리가 어떤 현상을 야기할지 살펴본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울음은 일생의 문제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진정하도록 도와줘”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 대사다. ‘인사이드 아웃’은 기쁨, 슬픔, 소심, 까칠, 버럭 5가지의 호르몬 캐릭터들이 역할을 바꿔가며 감정을 조절해 소녀 라일리의 성장기를 그린 영화다.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주 소재로 한다. 이 영화의 시사점은 5가지 캐릭터들이 우리 삶에 모두 필요한 감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쁨은 라일리를 위해 다른 감정들을 최대한 저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기쁨은 결국 깨닫는다. 이 모든 감정을 아울러야만 라일 리가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음을 말이다. 영화는 기쁨이가 슬픔이에게 손을 내밀면서 끝을 맺는다.영화에서 보여주듯 신체와 마찬가지로 감정도 단련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감정대리인은 이 단련에 있어서 개인의 감정을 둔화시키는 악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전문가들이 감정대리인을 마냥 달갑게 여기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연세대학교 심리학과 이동귀 교수는 “감정대리인이 우리 삶에 깊게 파고들면서 생기는 문제점은 자기감정이 인식이 안 된다는 거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감정을 인식하는 것과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 감정을 대리하다보면 자신이 진짜 원하는 욕구를 충족할 수가 없다. 행복하려면 이 욕구를 충족해야한다. 자기감정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또 진지한 관계를 학습할 때 토대가 약화될 우려도 있다. 이로 인해 감정이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공감이라는 감정에서 멀어지는 거다. 불투명한 막에 쌓여 경험이 반복되면 실제 상황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역지사지 할 수 있는 힘이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 관계 면역력, 실제 경험 통해야만 얻을 수 있어감정대리인이 야기하는 주요 문제점은 관계 면역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감정 표현에 있어 일종의 막을 형성함으로써 감정을 둔화시킨다. 이로 인해 실제 생활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을 우려가 크다. 마냥 간접 표현에 의지해선 안 되는 이유다. 이때 중요한 건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해내 적절히 즐기는 것이다. 이동귀 교수는 “감정대리인 또한 삶의 다양한 측면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밸런스를 잘 맞춰야한다. 취미 생활로 동영상 보기처럼 간접적 경험도 좋지만 그림을 그리는 등 직접 해보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은 또 다르다. 특히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분을 잘 해야 한다. 이모티콘처럼 디지털 장점을 향유하되 그것에 치중되게 되면 실제 관계 속에서 관계 면역력이나 행복감이 오히려 충분히 경험이 안 된다.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계속 찾고, 균형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감성 큐레이션 사업도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개인의 주관적 기분과 상황에 맞춰주는 추천 서비스다. 이미 감성 큐레이션을 앞세운 책이나 음악 어플리케이션 등이 출시된 상황이다.“잘못된 일만 신경쓰지마 되돌릴 방법은 늘 있으니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 대사 중하지만 감성 큐레이션도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고 표출하는 것에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정신건강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의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인들의 감정 근육이 얼마나 약해져 있는 지 보여주는 결과다. 감정대리인은 잠깐의 해소 창구일 뿐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대리 만족은 어디까지나 간접 경험에 불과하다. 운동을 해야 신체가 건강해지듯 직접 경험을 통해 마음 근육을 키우는 것이 가장 근본적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