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조업 위기…후진적 노동시장 개혁 없으면 미래 없다” - “소득주도성장 지나치게 낙관적 현실인식과 가정에 근거…사회적 약자 더 힘들어질 것” - “대기업 옥죄기 일관…기업 투자 대신 경영권 방어 치중 우려” - “전경련 범법자 아닌 피해자…경제단체 역할 수행할 수 있게 정부 포용해달라”
[헤럴드경제=정순식 기자] “다른 나라에서 모두 중시하는 대외경쟁력과 생산성, 효율성 등의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고,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쟁만이 화두다.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처럼 갑자기 위기가 닥치면 정신이라도 차릴 수 있지만, 서서히 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지금이 진정한 위기 아니겠는가.”
최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에서 만난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 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 원장은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위기감과 절박감을 강하게 호소했다. 정통 경제관료 출신의 권 부회장은 행정고시 19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과 국제업무정책관 등을 거쳐 제2차관을 지냈고, 200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를 거친 대표적 ‘경제통’으로 꼽힌다. 그는 내달로 2년 임기를 앞두고 있다.
전경련의 위상이 급전직하로 추락,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지만, 한국 경제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진실된 조언은 인터뷰 내내 이어졌다.
▶서서히 꺼져가는 엔진…한국 경제는 위기= 권 부회장은 간신히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긴 우리 경제가 지난해 세계 평균 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게 우리가 처한 냉정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투자가 침체되며 급속히 경기가 하락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정책의 3가지 축 가운데 공정경제를 제외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의 성과가 크게 부진하다”고 지적했다.
권 부회장은 특히 한국 제조업에 큰 위기감을 표했다.
그는 “한경연 조사에서 현재 무선통신기기와 디스플레이, 석유제품, 선박 등 4개 업종에서 경쟁국 대비 우위를 보이고 있지만, 3년 후에는 선박 1개 업종 만이 경쟁국 대비 우위를 가질 것으로 조사됐다”면서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우리나라도 중국의 ‘제조 2025’나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같은 제조업 육성전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노동시장 특유의 경직성과 낙후된 노동생산성, 강성노조가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부회장은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 기업 활동과 경제 성장에 부담된다는 내용은 OECD와 IMF 등 국제기구에서도 한국에 권고한 바 있으며,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WEF(세계경제포럼), IMD(국제경영개발원) 등에서도 한국의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며 “노동시장을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자동차산업 또한 근본적으로는 경쟁사 대비 높은 비용구조와 낮은 생산성에 기인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소득주도성장 경제학자 90%가 모르는 이론…사회적약자 더 힘들어질 것=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그의 철학 또한 확고했다.
권 부회장은 “저도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이지만 소득주도성장은 경제학자의 90%가 모르는 이론”이라며 “소득을 올려 소비를 유발하고, 소비가 내수로 이어져 투자가 확대된다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인 현실인식과 가정에 근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소비가 늘어도 해외소비 만이 늘거나 인구의 고령화에 따라 한계소비성향 또한 낮아지고 있어 한계가 분명한 정책”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이 임금의 연쇄 인상을 유발해 생산성 대비 고비용을 고착화하고, 높은 물가가 소득인상을 상쇄할 가능성이 높아 부작용이 크다”고 우려했다.
더 나아가 지난해 말 정부가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을 포함하는 시행령 개정을 강행한 데 대해서도 득보다 실이 클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이미 지난 2년간 29.1%나 인상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주휴수당을 부담해야 하는 한계선상에 있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은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결국, 돕고자하는 저소득층과 청년일자리를 줄이게 되는 역효과만 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부회장은 “경제정책은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파악해 차갑고 냉정한 머리로 하는 것이지, 뜨거운 머리만으로는 결국 역효과만 낸다는 게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라고도 했다.
▶기업 옥죄기 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전경련도 패싱이 아닌 동반자의 길로= 권 부회장은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등 기업을 옥죄는 일련의 정책이 집중되는 데 대해 크게 안타까워했다.
권 부회장은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돼 경영권을 위협받게 되면 결국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미래에 대한 투자 자금을 경영권 방어에 쓰게 될 공산이 크다”며 “4차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대변혁기의 시기에 기업의 불안감을 키워 투자를 가로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움직임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이 정치적 독립성 확보 방안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며 “이는 자칫 연금사회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실상 ‘패싱’의 대상으로 전락한 전경련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관련 재판에서 전경련은 죄인도 범법자도 아닌 피해자였음이 충분히 드러났다”며 “이제는 전경련의 기능을 활성화해 경제발전과 일자리창출에 기여할 수 있게 정부가 포용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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