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영상 사회부장ㆍ배두헌 기자]여기서도 폭로, 저기서도 폭로다. 색깔은 다르다. 범인(凡人)으로선 꿈도 못꿀 용감한 것이 있고, 음해 냄새가 짙은 것도 있다. 폭로가 활보하는 것은 진실에 목마른 현재와 관련이 크다.
세월호 침몰과 유병언 사망, 군 가혹행위 사망 사건 등을 둘러싼 어처구니 없는 대형사건들은 과연 ‘세상에 진실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마저 던져준다.
물론 진실에 대한 갈구는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다만 퀘퀘한 시궁창 냄새의 사건들이 도미노처럼 터지다보니 스멀스멀 각양각색의 폭로가 수면위로 나왔고,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젊은층의 내부 고발 문화가 겹쳐 화두로 재차 부상한 것이다.
윤일병 사망 사건은 폭로의 위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한 상병의 양심고백이 아니었다면, 단순 질식사로 영원히 무덤 속에 묻혔을 뻔 했다. 남경필 지사 아들의 군 폭행 역시 마찬가지다. 현역 도지사라는 위세에 눌렸을 법 하지만, 한 내부자의 폭로로 그 전말이 세상 밖으로 공개된 것이다. 폭로의 힘이 ‘은밀한 군’ 내부를 샅샅이 들춰낸 것이다.
최근들어 폭로 값어치는 껑충 뛰었다. 비단 군 폭력 문제 때문은 아니다. 어처구니없는 세월호 침몰과 유병언 사망 등에서 어둠의 권력이 진실을 은폐하려는 흔적이 느껴지자, 일반 시민들조차 ‘진실의 문’이 열리길 기대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있어 보인다.
폭로가 대접받는다는 것은 사회가 암울함 속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지금 ‘폭로를 권하는 사회’가 되고 있는 이유다.씁쓸한 ‘2014 대한민국’의 자화상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직장인 폭로관련 이미지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구린 냄새를 일거에 말살할 수 있는 폭로는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졌다. 희대의 도청논란이 일었던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표적이다. 닉슨의 하야를 부른 사건 전말이 밝혀진 배후엔 영웅의 폭로자가 있었다. 외국에서만 그런 것은아니다. 1990년 보안사 소속 윤석양 이병은 양심선언을 하며 육군보안사의 민간인 사찰활동을 폭로했고, 한동안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이같은 대형 폭로는 사회변화의 기폭제로 작용하곤 했다.
하지만 폭로가 만병통치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진실을 규명하는 열쇠가 되곤 했지만, 또다른 루머와 추문을 생산하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폭로는 무소불위 권력을 깰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이중폭탄’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폭로저널리즘 폐해를 낳았고,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문제 폭로는 ‘조직 속에서의 개인 고발의 범위’라는 미묘한 설전을 낳기도 했다.
최근 폭로에 의해 많은 일들이 어둠을 뚫고 세상 밖으로 공개됐지만, SNS 발달에 따른 고발 급증과 관련한 음모이론의 재생산은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진실을 요하는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모든 것들이 음모인 것처럼 얘기되는 경우도 꽤 있는데, 그 전달 통로가 SNS라는 점에서 공익적 측면을 위한 일부 통제도 필요하다”고 했다.
폭로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뒷맛이 영 개운치 않은 것은 폭로가 위력을 지닌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이라는 방증이라는 점 때문이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폭로가 힘을 쓴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정상적 절차에 의해 문제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무분별한 폭로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선 사회 모든 요소에서 정상적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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