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제 아무리 불경기에 소비 심리가 얼어붙었다 한들 소비의 미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상품이 눈에 들어왔다면, 그리하여 사무치게 그립다면 밤잠을 설치면서도 구매 미련을 못버리는 게 소비자다. 까막눈처럼 상품을 구매하는 것 같지만, 머릿속의 주판알을 두드릴 때만큼은 동물적 감각을 발휘한다. 가격, 성능 등 상품의 객관적인 스펙과 디자인, 색상 등 상품의 매력도를 종합적으로 계산해 구매를 결정한다. 이처럼 소비자는 똑똑하다.
이런 소비자들이 해마다 열광하는 날이 있다. 매년 추수감사절(11월 넷째 목요일) 다음날 금요일이면 미국 전역은 쇼핑 열기로 달아오른다. 이날은 미국 최대 쇼핑 성수기인 블랙프라이데이다. 20~30%대 세일은 기본이고 70% 이상을 웃도는 파격 세일에 일종의 극한 상황까지 연출된다. 행사 며칠 전부터 대형마트나 백화점 앞에 천막을 쳐 밤을 새는 텐트족, 올빼미족 등의 행렬이 이어진다. 한정 판매 초저가 상품을 잡기 위해 매장문이 열리자마자 육중한 몸을 휘날리는, 웃지 못할 풍경을 연출하는 쇼핑객들이 대거 등장하기도 한다.
미국 내 행사에 그쳤던 블랙프라이데이는 이제 블랙홀처럼 전 세계 ‘직구족(해외 직접 구매족)’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국내 직구 관련 카페에도 미국 유통업체들이 시간대별로 파격적인 가격을 내걸고 진행하는 ‘핫딜’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미국 주요 온라인 쇼핑몰의 이름과 갭, 랄프로렌 등 인기 수입 브랜드의 이름이 주요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상위권을 점령한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가 열리는 11월이면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이 해외 직구에 쏠리다보니, 국내 유통업체들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대규모 세일을 진행하곤 한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가 ‘글로벌 행사’로 성장한 사이,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표방하는 ‘코리아세일페스타(코세페)’는 어땠을까. 지난달 28일을 시작으로 오는 7일까지 열흘간 일정이 잡혔지만 행사 열기는 시들시들하다. 사상 최대의 세일행사라고 선전했지만 할인폭이 10~30%에 그쳐 일반세일과 큰 차이가 없었다. 주요 백화점을 둘러봐도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왜 그럴까.
정부 역시 소비진작의 촉매제로 만들겠다던 3년 전의 의욕은 온데간데 없다. 매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모습이다. 배정 예산이 지난해 51억원에서 올해 34억5000만원으로 줄고, 참가기업 수도 지난해 446개에서 231개로 반토막 났다. 행사기간도 지난해에 비해 3분의1로 단축됐다. 그사이 코세페에 무슨 일이 생겨도 단단히 생겼음을 입증한다.
코리아세일페스타가 매년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한국의 유통구조에 기인한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 유통업체는 상품을 직접 구매해 판매하는 반면, 국내 유통업체는 판매 수수료를 받고 단순히 장소만 제공하는 방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미국 유통업체는 연말결산 직전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파격적인 가격으로 박리다매를 한다”며 “보관비를 들여가며 재고를 처리하는 것보다 그 상품을 소비자가 직접 가져가는 게 유통업체로서는 더 이득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국내 유통업체는 재고부담이 없어 큰 폭의 할인판매를 할 이유가 없다”며 “정부가 주도한 행사에 억지로 장단을 맞추다보니 행사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그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코리아세일페스타는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한다.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에서 콘셉트만 베껴올 게 아니라 제조ㆍ유통업체와 머리를 맞대고 충분히 사전분석을 한 뒤 행사를 기획하고 최적의 시점을 잡아 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시장에 맡기고 정부는 간접지원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낫다.
코세페를 국내의 대표 쇼핑 관광축제로 내세우려면 그에 걸맞은 높은 할인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언제까지 소비자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거듭 강조하지만, 절대로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