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슈섹션] 전라북도 익산 쌍릉에서 발견된 인골이 백제의 무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결론났다. 무왕은 600년∼641년까지 한반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삼국시대 말기에 백제를 이끈 군주로 삼국의 균형추 역할을 했던 인물이었다.
‘삼국사기’에는 무왕이 풍채와 뛰어나고 뜻과 기상이 호방하다고 기록됐다. 그는 600년 법왕이 죽은 뒤에 왕위를 계승했는데, 재위 기간에 신라(新羅)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제위 12년인 611년에는 수나라와 사신을 주고받으며 고구려 침공에 대해 의논하기도 했다. 수나라는 백제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침공 작전을 조율하기도 했다. 그러나 612년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 침공에 나섰을 때 백제는 수나라를 돕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고구려 공격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이 수나라의 멸망과 중국, 더 나아가 한반도의 역사를 바꾼 유의미한 사건인 점을 고려해볼 때 무왕의 외교정책은 한반도의 명운을 바꿔놓았다.
무왕은 특히 ‘서동설화(薯童説話)’로 많은 이이게 알려졌다.
설화에 따르면 무왕은 과부인 어머니와 연못의 용과의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마를 캐어 생계를 유지해 서동(薯童)이라고 불렸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신라의 도읍인 서라벌로 가서 선화공주가 밤마다 남모르게 서동과 어울리고 있다는 노래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했다. 그리고 선화공주가 궁궐에서 쫓겨나 귀양을 가게 되자 그녀를 데리고 백제로 와서 결혼했으며, 어렸을 때 마를 캐면서 발견해 모아두었던 황금으로 인심을 얻어 백제의 왕위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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