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제약사 40곳 7월부터 시행 대상 -PC오프제ㆍ근무시간 외 콜 금지 등 도입 -직군 따라 선택ㆍ간주ㆍ재량근로제 등 다양 -보완점 찾아 최상의 근무환경 찾아야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 #1. 제약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모(35) 씨는 7월부터 집 근처 수영장에 등록했다. 다이어트를 위한 측면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최 씨는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30분에 퇴근하는 탄력근무제를 선택했고 기존보다 30분 이상 빨라진 퇴근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최 씨는 ‘워라밸’을 실현할 수 있다는 면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환영하고 있다.
#2. 제약사 영업직 김모(33) 씨는 7월 첫날 출근을 회사로 하지 않고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 병원으로 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보통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처리하고 나왔는데 이번 달부터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영업직의 경우 간주근무제를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평소보다 늦잠을 잔 것이 좋긴 하지만 앞으로도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곧장 영업 현장으로 출근해 거기서 퇴근하는 일이 자주 발생할 일이 적응이 될지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다보니 스스로 나태해져 근무에 지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300인 이상 사업장을 중심으로 7월부터 시행됐다. 제약업계도 다른 산업군과 마찬가지로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줄어든 근무시간을 활용해 자기계발을 위한 투자와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는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측면에서 환영하는 분위기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는 숙련된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는 것이 쉽지 않아 생산성 하락이나 연구개발 시간이 줄어들어 신약이 나오는 시간이 지체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상장제약사 40곳 시행…직군별 다양한 근무제 도입=주 52시간 근무제의 핵심은 근로자의 한 주 근무시간이 주 52시간(평일 40시간+연장근무 2시간)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은 7월 1일부터 제도가 적용됐다.정부는 시행 초기 혼란을 줄이기 위해 6개월 간 처벌 및 행정처분 등의 단속을 유예하기로 했다. 사업주들은 6개월 동안 제도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제약업계 중 7월부터 적용 기업은 총 40곳이다. 나머지 제약사는 대부분 50~299인 사업장에 속해 2020년 1월부터 적용된다.
제약업계는 직군별 특수성을 감안해 직군에 따른 근무제를 도입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일반 사무직의 경우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곳이 많다. 집중 업무 시간을 제외하고 출퇴근 시간을 직원 스스로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후 6시 이후에는 회사 내에서 컴퓨터 업무를 할 수 없도록 PC오프제를 실시하거나 근무시간 외에는 자사 영업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도 시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유연근무제는 사무직의 경우 몇달 전부터 시행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각기 직원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근무하는 제도는 직원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반면 공장 근로자 등 생산직에게는 탄력근무제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생산이 갑자기 많은 달에 주 52시간 근무를 초과한다면 다음 달 근무시간을 줄여 평균 주 52시간 근무시간을 맞추는 방식이다. 보통 2~3개월 단위로 구분해 탄력근무제를 적용하게 된다.
▶영업ㆍ연구개발직, 주 52시간 지키기 쉽지 않아=한편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오히려 업무 효율성 저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직군도 있다. 영업직의 경우 간주근무제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업사원은 병의원 등 영업 현장으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주 52시간으로 명확하게 구분짓기가 어렵다. 이런 경우 근로자 대표와 근로자의 합의를 통해 외부에서 일한 시간이 하루 10시간이든 6시간이든 통상 8시간 근로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다만 퇴근 시간 뒤 개최되는 회사 공식행사나 주말 등에 열리는 관련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경우 대체휴일이 주어지는 방식 등으로 주 52시간 근무를 맞춰가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장으로 출퇴근하다 보면 위에서 전달되는 지시사항이 잘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고 직원들의 긴장도가 낮아져 성과가 기대치만큼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며 “서류상으로만 하루 8시간 근무일 뿐 집에 가서도 근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신약개발을 책임지는 연구개발직이다. 신약개발은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좋은 신약이라도 경쟁사보다 늦게 나오면 상품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그런데 연구개발 직원의 근무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묶어 놓으면 연구개발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연구개발직은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해 대체 인력이나 추가 인력 충원도 쉽지 않다. 때문에 연구개발직에는 업무 방식을 근로자 재량에 위임하는 재량근무제를 도입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연구개발직은 신약개발 프로젝트 등에 투입될 경우 몇달 집중적으로 근무를 하고 다른 기간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안이 많을 것”이라며 “하지만 신약개발이란 것이 대부분 년 단위의 장기 프로젝트가 많은데 이런 근무시간 제한은 신약개발에 대한 동기부여가 낮아질 수 있어 우려스러운 면도 있다”고 했다.
▶어차피 시행된 제도…6개월간 최상의 방법 찾아야=이런 기대와 우려 속에도 주 52시간 근무제는 출발선을 넘었다. 하고 싶지 않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업계에서는 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이 길지는 않지만 이 기간 동안 최선의 방법을 찾는 고민을 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지키지 않을 경우 사업주가 처벌을 받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됐다”며 “취지는 좋은 제도인 만큼 최대한 근로자와 사업자 모두 만족할 만한 방법을 찾기 위해 유예기간 동안 고민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 영업직 관계자는 “그 동안에는 저녁까지 의사를 만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것이 영업을 잘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그런 방법이 최상이 아니란걸 깨달아가고 있다”며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도 그만큼 성숙해질 때 이 제도가 잘 정착될 것 같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