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노동의 가치 상실시대가 도래했다. 이제는 땀 흘려 일을 하는 것보다 자본과 자산으로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된 지 오래다. 연봉 인상률보다 집값 상승률이 더 높아 “나보다 우리집 아파트가 더 많이 벌었다”는 자조 섞인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은 로봇이, 인공지능이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노동의 영역을 상당부분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시대에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낭떨어지에서 동아줄을 만난거 마냥 반갑고, 환영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근로자의 날에 이례적으로 대국민 메시지를 내고 “노동의 가치와 존엄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가치와 존엄이다”라며 “노동이 제도에 의해, 또는 힘 있는 사람들에 의해 홀대받고 모욕받지 않는 세상을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정책을 정권 초기부터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이상’과 우리나라의 ‘현실’의 거리다. 6030원이던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려면 매년 인상률이 두자릿수여야 한다. 안 그래도 어려운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부담에 더 허리가 휘게 됐다”며, 시급을 받는 알바생들은 “사장의 ‘앓는 소리’에 언제 그만두게 될지 모르겠다”라며 전전긍긍이다. 주 68시간이던 최대 근로시간을 76% 수준인 52시간으로 급하게 줄이려고 하다 보니 회사마다 어디까지가 근로시간인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당장 적용이 어려운 사업장에서는 ‘악’ 소리가 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특수 고용 노동자에게 ‘노동자’ 지위를 부여하는 정책도 마찬가지다. 모든 근로자가 정규직이 되고 노동 3권을 보장받으면 좋겠지만, 인건비 상승 등 기회비용이 발생하다 보니 곳곳에서 잡음이다. 심지어 특수 고용 노동자의 70%를 차지하는 보험 설계사들은 ‘노동자’ 지위보다 지금처럼 ‘사업자’ 지위가 낫다고 말할 정도다. 노동이 홀대되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를 쇄신하려면 제도적인 충격이 필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난 10년간 시장의 자율성이, 자본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떠받들여지다 보니 노동의 가치 측면에서 보면 매우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기 때문이다. 기울어진 면을 평행으로 맞추려면 반대편을 더 힘차게 눌러야 탄성으로 힘의 균형이 다시 맞춰지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급하게 먹은 음식이 체할 수 있듯 빠르고 무리한 정책 추진은 또 다른 부작용을 잉태할 수 있다. 지지율이 높은 집권 초기에 공약들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고 싶은 집권자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 주체들이 입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피해들을 간과해선 안된다. 높은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사실 쉬운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을 무시한 이상의 실천은 국민들의 희생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아직 4년이나 남았다. 그리 급할 게 없다. c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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