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거래소, 전자지갑 1050개 추적해

피싱 피해자 1137명에게 263억 돌려줘

피해자금 잊고 살던 이들 ‘뜻밖의 선물’

보이스피싱 [연합]
보이스피싱 [연합]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경찰이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를 당해 거액을 잃고 속앓이하던 피해자 1137명에게 피해금 263억원을 되찾아줬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보이스피싱 피해가 의심되는 계좌를 동결하고도 피해자를 특정 못해 범죄수익을 가지고만 있었는데 경찰이 자금 흐름을 역추적해 피해자를 일일이 찾아냈다.

29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광역수사대는 3년에 걸쳐 보이스피싱 피해자 1137명을 찾아 가상자산 거래소에 묶여있던 이들의 피해금 263억7000만원을 돌려줬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계정 1050개 뒤졌다

각종 피싱범죄로 발생한 피해금 가운데 가상자산 지갑으로 유입된 자금도 상당수에 달한다. 범죄조직이 자금을 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세탁하거나, 일시적으로 자금을 숨기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불법 자금 사실을 인지하면 계정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해 왔다. 피해자들이 동결된 계좌 속 피해금을 돌려받을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는 피싱 피해자가 구제를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은 금융회사(은행 등)에 국한돼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피해자 정보 등을 공유받지 못해 범죄자금을 묶어만 두고 돌려주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 사실을 안 경찰은 2023년 9월부터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들과 협업해 ‘피해금 찾아주기’에 나섰다. 2017년 이후 국내 5곳의 가상자산 거래소가 피싱범죄 피해금 유입을 이유로 동결해 뒀던 전자지갑 1050개의 자금 출납 흔적을 뒤졌다. 그 결과 동결된 가상자산 계정 1050개, 피해금 263여억원을 특정했다. 이후 은행 계좌와의 연결성까지 분석해 피해자 1137명(이달 15일 기준)에게 피해금을 돌려줬다.

잊고 살았던 돈 되찾은 피해자들

경찰의 3년 추적 수사 덕분에 피해자들은 잊고 살았던 돈을 되찾았다.

세종시에 사는 직장인 이모(56) 씨는 지난해 저축은행 직원으로 속인 보이스피싱범에게 95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 뒤늦게 사기임을 깨닫고 신고했지만 돈을 보낸 계좌는 이미 텅 빈 뒤였다.

피해금이 가상자산 거래소로 흘러간 사실조차 몰랐던 이씨는 돈을 되찾는 것을 사실상 포기했다.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속앓이를 하던 그에게 경찰이 2200만원을 찾아줬다.

인천에 거주하는 주부 박모(46) 씨도 지난해 보이스피싱을 당해 잃은 4000만원 가운데 절반을 이번에 돌려받았다. 그 역시 사기당했단 사실을 깨닫고 늦게서야 신고했으나 입금했던 은행 계좌는 이미 비어있었다. 피해금이 가상자산 계정으로 넘어갔단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가상자산 거래소 ‘사각지대’ 해소

오는 10월부터는 이 같은 제도적 사각지대가 해소된다. 다음 달 1일부터 개정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시행되면서 가상자산 거래소도 은행과 마찬가지로 법상 ‘금융회사등’에 포함된다. 피해금이 은행 계좌를 거쳐 가상자산 거래소로 넘어가더라도 피해자와 피해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거래소 계정을 지급정지한 뒤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 있게 된다.

특히 피해금이 가상자산으로 바뀐 경우에도 피해자산으로 인정돼 환급 대상에 포함된다. 피해자가 원할 경우 거래소가 해당 가상자산을 매도한 뒤 현금으로 돌려주는 것도 가능해진다.

한편 경찰은 동결 기간이 끝난 직후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피해금 약 30억4000만원을 임의로 처분한 130명에 대해서도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그간 적극적인 경찰 활동으로 법률과 제도의 한계를 보완해왔다”며 “오는 10월부터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하더라도 지급정지를 신속하게 신청하면 피해금이 가상자산 거래소로 흘러가더라도 보다 빠른 피해 회복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kid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