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국가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가 어떤 질문이라도 대답을 하겠다는 파격적인 개방성은 국민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청와대 국민청원은 단순한 창구를 넘어 '소통의 장'으로서 기능하고자 한다. 사람의 교류가 있는 곳에는 다양한 감정과 심리가 뒤섞일 수밖에 없는 법. 글이 홍수처럼 차고 넘치는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어떤 불길이 어떻게 타오르고 있을까. -편집자주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화면 캡처)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화면 캡처)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희윤 기자] 다음 아고라가 생긴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뜨거운 이슈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게 여론이 형성되던 공간은 현재 미미한 영향력만 남기고 있다. 다음 아고라가 초반에는 건전한 토론의 장을 형성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쪽에 편향되고 과격해지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출범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청와대 국민청원은 어떨까. 다음 아고라처럼 어떤 이슈가 터지면 그와 관련한 청원이 꼭 게시판에 올라온다. 가열되는 속도는 다음 아고라보다 훨씬 빠르다. 그런 만큼 동시에 어두운 면도 더 빨리 찾아왔다. 현재 국민청원의 장에는 ‘분노’를 중심으로 다음 아고라를 거쳤던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여기에 처음 실행하는 정책에 따르는 보완점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진 내용과 무관(사진=픽사베이 제공)
사진 내용과 무관(사진=픽사베이 제공)

■ 답변의 실효성과 소통 사이지난 2월 21일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임종석 비서실장은 국민청원 제도에 대해 보고하면서 “답변하기 부적절한 청원도 적지 않게 올라온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어쨌든 답변하겠다고 약속한 이상 곤란한 질문이라도 원론적 답변이라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찾았다.국민청원의 원칙 중 하나는 20만 명의 동의를 얻으면 어떤 청원이든 답변을 해야 한다는 것. 답변을 하기로 약속했으니 그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옳다. 다만 임종석 비서실장의 말대로 원론적 답변만 들을 수 있다면 해당 청원에 서명한 20만 명은 과연 무엇을 위해 뜻을 모았을까? 답변하는 청와대의 입장이나 답변을 듣는 국민의 입장이나 일종의 사회적 낭비가 될 수 있다.사실 청와대는 ‘대답’을 한다고 했지, 청원의 내용을 100% ‘실행’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한 건 아니긴 하다. 헌법을 근거로 ‘시행할 수 없다’고 답변할 수도 있다. 앞서 조두순 출소 문제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이중처벌 금지 및 일사부재리의 원칙 원칙에 의거해 위헌 사유가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청와대는 국민청원을 ‘소통의 장’을 취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해결을 기다리는 수많은 청원들이 그저 ‘소통’으로만 남는다면 국민청원이 지니는 의미는 고인 물이 된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 일부 여론이 전체로 비춰질 수도국민청원은 청와대가 국민의 뜻을 직접 인지하고 답변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이런 파격적인 선언은 자신의 의견이 직접적으로 정부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야기했다. 동시에 청원은 더 많은 동의를 얻는 것이 관건이 됐다. 그렇다 보니 동의 수를 얻는 것이 목표가 돼 과정보다 결과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문제가 제기된 배경과 짚어야 할 부분들이 다소 가려지는 현상이 있는 것이다. 특정 여론을 가진 조직이 막강한 힘을 발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게시판에는 한 명이 여러 개의 청원을 올려 특정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다. 온라인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상 아이디를 통해 청원 추천 수를 불리는 방식이 활용될 수도 있다. 실제로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카카오톡 계정을 통해 동의자를 확보하는 우회 기법이 알려졌다. 이에 청와대는 소셜로그인 중 한 방법인 카카오톡 로그인을 막아 놓은 상태다. 물론, 그 특정 여론도 국민의 일부다. 하지만 청원이 청와대까지 어떻게 올라가는 지 또한 중요한 발자취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거짓 의견들이 마치 커다란 여론인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 국민청원 게시판, 한낱 트렌드로 그칠까최근 국민청원 게시판을 보면 다소 황당할 수 있는 청원들이 심심찮게 올라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예컨대 ‘돈을 빌려간 후 연락이 되지 않는 지인을 찾고 싶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을 어지럽히면 퇴출하라’ ‘마지막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 영화 5천 원 요금을 매주 수요일로 확대하자’ ‘김성태 원내대표의 단식투쟁 현장에 CCTV를 달아 달라’ 등이다. 20대 조모 씨는 “요즘은 사소한 문제 등 너무하다 싶을 만큼 아무 사안이나 국민청원을 넣는 것처럼 보인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그에 합당한 시민의식을 갖춰야 할 것 같다”는 입장을 드러냈다.이런 청원들이 결코 틀리거나 게시판에 올려서는 안 되는 글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게시판이 점점 뜨거워지면서 과도한 감정표출 현상이 극심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적인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차분한 논의 과정을 건너뛰는 것이다. 정부의 개입이 아니라 개인 간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 ‘국민청원’의 탈을 쓰고 있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청원글에는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만 있을 뿐, 그를 뒷받침할 근거나 이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간혹 욕설이 담긴 글까지 올라온다. 이에 대해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국민청원은 대중이 자신들의 의사를 표출하는 집단적인 하나의 의례이자 행위다. 긍정적이라거나 부정적이라고 재단할 성질의 경우는 아니다”라면서 “단지 최근 나타나고 있는 하나의 인터넷 문화 정도의 의미로 보여 하나의 놀이처럼 유지되지 않을까 한다. 요즘은 이게 트렌드가 됐으니 당분간은 대중의 집단적 의사가 있을 때마다 자연스런 국민청원을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 그럼에도 나비효과를 꿈꾸는 국민들앞서 부정적인 측면이 상당수 거론됐지만, 현재 국민청원 게시판이 국민의 절실함을 다양한 분야에 걸쳐 읽을 수 있는 장임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아울러 게시판에는 논리적이고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짚는 청원도 많다. 예를 들어 현재 청원이 진행 중인 사안 중 지난 달 29일 게재된 ‘독서를 막는 도서정가제 폐지 청원’은 눈여겨볼 만하다. 해당 청원은 가장 먼저 도서정가제 폐지의 실패 사례를 들었다. 이어 실태조사 및 시장전망 등 각종 객관적인 수치와 자료를 제시했다. 그 근거로 자신의 청원에 진정성과 객관성을 부여했다. 타당한 논리는 많은 이들을 설득했고, 현재 해당 청원의 참여인원은 3만2000명이 넘었다.국민청원은 '대중'이라 불리는 이들이 정부가 마련한 공간에서 자신들의 뜻대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내용이 어떤지를 떠나 사람들이 모였고, 목소리는 커졌다. 그 행위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제 국민청원 게시판은 여론을 가장 가까이서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자신의 의견이 직접 청와대에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사회적 관심을 유도한다. '소통'을 강조하던 청와대의 일차적인 효과는 이미 거둔 셈이다. 국민청원이 출범한지 이제야 곧 1년이 된다. 새롭게 시작하는 정책에는 그 허점과 부족한 점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시행을 하고나서야 나타나는 문제점들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영민한 대처를 하는 일이다. 청와대는 국민청원 중심에서 벗어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 국민은 주어진 공간을 올바르게 활용해야 한다. 장의 열기가 어떤 방식으로 타오를지, 이를 더 뜨겁게 만드는 연료는 무엇일지, 불길이 어디로 뻗힐지 혹은 까만 재만 남길지 고민하는 일. 이것이 바로 내일을 위한 오늘의 숙제다.[국민이 바꾸는 세상] ①이슈의 중심에서 ‘국민청원’을 외치다[국민이 바꾸는 세상] ②청와대 국민청원의 현주소 [국민이 바꾸는 세상] ③‘국민청원’ 둘러싼 공감의 이면[국민이 바꾸는 세상] ④청와대 국민청원, ‘내일’을 위한 오늘의 숙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