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가 재직하는 동안 쌓인 퇴직금을 금융기관에 적립했다가 퇴직할 때 연금이나 일시금으로 지급해주는 퇴직연금 제도가 지난 2005년 도입된 후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수익률이 연 2% 정도로 기대에 못 미치는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고용노둥부)가 나서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기금형은 수익성을 좆는 만큼 계약형에 비해 기금 건전성 관리에 취약하고 안정성이 떨어져 ‘근로자의 노후를 위한 종자돈’이란 딩초의 취지를 훼손하는 역기능이 더 크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금형을 풀어 ‘수익률 메기효과’를 노리다가 자칫 게(수익률)도 구럭(안정성)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행 퇴직연금과 어떻게 다른가=현행 퇴직연금은 계약형으로 불린다. 사용자, 즉 기업이 은행이나 보험사, 증권사 등 금융기관과 계약해서 퇴직연금 제도 운영 업무 전체를 위탁하는 식이다. 이와 비교해서 기금형은 기업에서 독립된 연기금 수탁법인을 설립해 노사협의회 등이 기금운영관리 전반을 결정하고, 필요시에 자금운용을 외부 전문기관에 일임하는 구조다. 즉, 하나의 독립된 연금전문 금융기관을 설립하는 것과 유사하다. 기금형은 기금투자의 유연성이 크며, 수급권자인 근로자 의견 반영이 용이하다는 게 장점이다.
▶수익률 메기효과 나타날까?=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168조 원의 연간 수익률은 1.88%에 불과했다.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9%였던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다. 다수 근로자들이 선택하는 확정급여형(DB) 상품이 예적금 등 안전 상품에 돈을 넣어두고 있어서다. 퇴직연금 기금형이 기존 계약형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수탁기관 내 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영위원회를 통해 자금을 운영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전문성과 수익률이 높을 것으로 봐서다. 기금형의 성공 모델로 호주의 연금펀드가 꼽힌다. 수익률이 연평균 9.2%에 달한다. 주식 등 공격적인 자산에 대한 투자를 통해 성과를 높인다. 투자 리스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금형이 수익률 해법이 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확정급여형(DB형)에서는 기금형이든 계약형이든 운용형태와 수익률과는 상관없이 근로자가 퇴직시 받게되는 금액(근속연수 × 퇴직전 30일분 평균임금)은 동일하다. 확정기여형(DC형)의 경우, 기금형이든 계약형이든 근로자가 직접 금융상품(예금, 펀드, GIC 등)을 선택해 운용하는 것은 동일하므로 상품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방법상의 차이만 있을 뿐 현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반면 기금형은 계약형과 달리 수탁법인 설립과 운용, 전문가 채용 등을 위한 비용이 추가로 들어간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또 확정급여형이 대다수를 차지(전체 적립금의 65.5%)하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과도한 수익률을 추구하는 운용방식은 기업 입장에서 리스크가 그만큼 증가하는 것이다.
▶기금형 건전성 감독체계 부실ㆍ근로자 수급권 보호 취약= 현재 계약형에서는 운용관리 및 자산관리계약 모두를 외부 금융기관에 위탁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 반면 기금형에서는 자산보관업무만을 외부 금융기관에 위탁하도록 의무화되고 나머지는 수탁법인 자체적으로 수행 가능한데 이 빈 틈을 헤집고 도적적 해이, 대형 금융사기가 빈발한다. 지난 2002년 일본 최대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사인 AIJ자산운용이 수탁법인들의 비전문성, 허술한 운용체계를 이용해 총 2,000억엔(약 2조원)의 수탁금 중 무려 95%를 날려 가입자 88만명이 피해를 봤다. 이보다 앞서 1991년에는 영국 언론 재벌 로버트 맥스웰이 직원들의 기금형 자산을 유용해, 총 4억파운드의 손실이 발생하고 가입자 2만명이 낭패를 봤다. 기금형은 내부감사, 회계법인, 계리업자 등에 의한 자체 검증만 의무화해 공적 관리ㆍ감독에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다.
계약형은 금융회사와 계약을 통해 운영하므로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금융감독원에서 검사 및 감독이 이뤄지고 있으나, 기금형은 수탁법인에 대해 노동부에서 직접 관리ㆍ감독 하므로 이를 감당할 충분한 인력울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부의 퇴직연금복지과 인원은 현재 12명에 불과하다. 미국(200여명), 호주ㆍ네덜란드(80여명) 등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또 미국, 영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사고시 퇴직연금 지급보증체계가 마련돼 있으나 우리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는 실정이다. 기금형은 이런 인프라를 구축한 후 시행해도 늦지 않다.
▶기금형 도입 아직은 ‘득보다 실’=금융사고를 사전에 예방하는 관리감독 차원에서는 계약형이 우수하다. 현행 금융감독체계와 잘 부합하는 제도여서다. 대신 계약형의 낮은 수익률을 개선하기 위해 낙후된 자산운용시스템을 손 볼 필요가 있다. 성주호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는 “투자원칙보고서(IPS) 작성, 그리고 투자정책위원회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며 “아울러 현행 자산운용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풀어나간다면 현행 계약형은 기금형의 장점을 상당부분 포함하는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문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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