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기자]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년이 넘도록 2만달러대에 갖혀 있다. 이른바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선진국의 조건이라는 3만달러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경제규모의 양적 확대보다 투명성과 신뢰도, 경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2006년 2만795달러를 기록하며 2만달러대에 처음 진입했지만, 지난해까지 11년째 2만달러대에 머물렀다. 1인당 소득은 2007년 2만2992달러로 빠르게 증가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2009년엔 1만8000달러대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2010년부터 다시 완만히 증가해 2014년에는 2만7892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이것이 지금까지 기록한 국민소득 최고 기록이다. 이후 저성장과 고유가 등이 겹치면서 2015년에는 2만7105달러로 오히려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2만7561달러로 소폭 회복했지만 여전히 2014년 수준을 밑돌았다. 3만달러와는 아직도 약 9% 정도 차이가 난다.
달러로 환산한 1인당 소득은 경제성장률은 물론 대외 교역조건의 변화와 환율 변동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 외형인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더라도 고유가로 교역조건이 나빠지거나 원/달러 환율이 상승(원화가치 하락)하면 국민소득이 감소할 수 있다.
올해도 환율이 지난해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교역조건이 동일한 수준이라 가정할 경우 경제가 3% 성장하더라도 국민소득은 2만8400달러 안팎으로 3만달러 진입이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인당 GDP가 내년에 3만달러대에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2만달러대에 갖혀 있는 것은 경제체질을 바꾸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향후 1~2년 또는 2~3년 사이에 3만달러대에 진입한다 하더라도,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성장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결과는 우리경제의 과제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거시경제나 인프라 부문에서는 양호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제도 운영이나 노동시장ㆍ금융부문의 효율성 등은 경쟁국에 한참 뒤져 있는 것이다.
올해 평가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137개국 중 26위로 2014년 이후 4년째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특히 금융시장의 성숙도(74위)와 노동시장 효율성(73위), 제도(58위) 등의 측면에선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경쟁력을 깎아먹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세부 평가항목을 보면 공공부문에서는 정책결정의 투명성이 98위에 머문 것을 비롯해 정부규제 부담(95위),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90위),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81위) 등 투명성 지표에서 후진국보다도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부문의 경우 기업 이사회의 유효성은 137개 비교대상국 중 109위에 머물렀고, 소액주주의 이익보호(99위), 기업경영윤리(90위)도 최하위였다.
노동시장의 효율성과 관련한 세부 평가항목에서 노사간 협력은 세계 최하위인 130위에 머물렀고, 정리해고 비용도 112위에 머물렀다. 여성 경제활동참가율(90위), 고용 및 해고관행(88위), 임금결정의 유연성(62위) 등도 크게 뒤졌다. 우리나라의 노사 관계가 아직도 전근대적인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사회적 신뢰는 바닥권에 머물고, 갈등 조정기능도 극도로 취약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취약점에 대한 개혁이 직접적으로 공급이나 수요를 증대시켜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일 경우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줄이고 사회ㆍ경제적 안정을 이룸으로써 궁극적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투명성을 유럽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거나 사회적 신뢰도를 10%만 높여도 4%대 성장이 가능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취약점을 바로잡지 못할 경우 국민소득이 3만달러대에 진입하더라도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