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석좌교수 조너선 스페스의 명저 <강희제>.
예일대 석좌교수 조너선 스페스의 명저 <강희제>.
지난해 10월 통합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부터 숱한 견제를 받고도 당선된 이기흥 회장.
지난해 10월 통합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의 실세로부터 숱한 견제를 받고도 당선된 이기흥 회장.

# 2001년 12월 중국에서 TV드라마 ‘강희제국(康熙帝國, 강희왕조로도 번역)’이 시작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중국 역사상 61년이라는 최장기간 통치에 성공한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는 우리로 치자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 급이다. 드라마를 비롯해 수많은 책이 나왔고, 중국의 유력 정치인들은 툭하며 ‘강희제를 배우자’고 언급한다. <강희제전>을 쓴 프랑스선교사 조아생 부베는 “기독교만 믿으면 부족함이 없는, 완견 무결한 군주”라고 평했다. 강희제와 관련해서는 서구사회 최고의 중국역사학자인 조나단 스펜스 교수가 쓴 ‘강희제(원제 Emperor of China)’가 돋보인다. 소설처럼 흥미롭게 쓰여진 이 책은 강희제의 통치철학이 ‘관대’임을 알려준다. 책의 소챕터 중에 ‘관엄화중 평안무사방호(寬嚴和中, 平安無事方好)’가 있다. ‘관대함과 엄격함을 조화시키고 평안함이 우선이다’라는 뜻이다. # “자신에게는 가을 서릿발처럼 엄격하되, 타인에게는 봄바람처럼 따스해야 한다(임기추상 대인춘풍·臨己秋霜 對人春風).”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문무일 검찰총장이 밝힌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임기추상 대인춘풍’을 하지 못하는 조직이 검찰이라는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나왔지만, 어쨌든 참 좋은 말이다. 중국 교육계의 거물 황염배(黃炎培)는 아들에게 ‘화약춘풍숙약추상(和若春風肅若秋霜)’이라는 문구를 남겼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되, 자신에게는 가을 서릿발같이 엄격하라는 의미다. 공자님도 ‘군자는 제 잘못을 생각하지만 소인은 남을 탓 한다(君子求諸己小人求諸人)’고 했다. # 지난 13일 체육계에서는 물밑에서 제법 화제가 된 선고공판이 하나 있었다. 이기흥(62) 대한체육회장에 대한 당선 무효 소송이었다.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이 회장과 함께 5명의 후보였던 장정수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운영위원이 소송을 제기했고, 이날 최종적으로 서울 동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문유석 부장판사)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조목조목 원고측 주장을 반박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봐도 납득이 갈 정도 명백했다. 이 소송이 진행되면서 대다수 언론과 체육계는 ‘선거에는 소송이라는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몇몇 언론과 인사들은 이 소송을 주요 근거로 이기흥 회장과 대한체육회를 적폐대상이라고 공격했다. 그리고 이들은 소송결과가 나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정치권의 문법처럼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원 판결이 유감이다”라고 반발이라도 했으면 당당해 보였을 텐데.

# 이기흥 회장이나, 대한체육회를 두둔할 생각이 없다. 나름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태릉선수촌장의 비체육인 임명 등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다. 아직 초창기인 만큼 평가는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전히 일부 못된 체육인들이 정치권 등 외부세력에 의존해 ‘정치’를 시도하고, ‘여론몰이’에 나선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체육발전을 내세우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이해에 충실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라이벌이나 남에게는 엄격한 사람들이다. 특히 한국사를 넘어 세계사적으로 화제가 된 2016~2017 탄핵 정권교체에 묻어가려는 행태는 꼴사납기만 하다. # 최순실 일당은 체육을 재테크와 권력남용으로 이용했다. 최순실의 수하인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의 실세와 친분이 있고, 또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그 체육인은, 당장 물러나지는 못해도 최소한 부끄러워해야 한다. 실제로 자신들의 부역이 들통이 날까 숨죽이고 있는 체육인들이 있다. 뭐 이 정도까지야 먹고 살아야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대인춘풍’할 수 있다. 그런데 이중에는 ‘문빠’인 척하는 이들도 있다. 슬쩍 자신들의 정적을 적폐라고 공격한다. 적폐가 적폐청산을 시도하니 참 질긴 생명력이라고 할 수 있다. # 대한체육회장 선거만 봐도 그렇다. 당시 김종 등 문체부의 ‘완장’들은 차기 체육회장을 물색했고, 특정인사에게 출마를 권유했다. 다른 몇몇 후보들은 ‘완장’ 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표를 얻으려고 했다. 이기흥은 비여권 후보였다. 그런데 지금 이기흥의 대한체육회가 적폐청산의 대상이라고? 대세에 편승해 정적 이기흥을 공격하려는 얄팍한 꼼수다. 공격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냥 이기흥과 대한체육회의 잘잘못을 따지면 된다. 아무렇게나 적폐를 쓰려면 먼저 ‘너님’들이 적폐가 아닌가 생각하는 게 먼저다. 만일 당시 선거에서 박근혜 정부와 가까운 인사가 대한체육회장이 됐다고 상상해보자. 정말 체육계는 적폐청산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체육인들, 부디 임기춘풍하고, 대인추상하지는 맙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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