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이라크 반군이 시리아와 요르단 국경지역을 장악함에 따라 이라크 내전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내전 사태가 요르단 같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퍼질 수 있다”며 ‘제한적 군사 개입’을 서두르고 있지만, 이란 뿐 아니라 이스라엘 등 중동지역 우방들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 내부적으로도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오바마의 외교정책이 ‘중동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반군, 접경지역 장악→주변국 확산 우려↑=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라크ㆍ시리아 이슬람국가’(ISIS)는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에서 113㎞ 떨어진 서부 안바르주(州) 소도시 루트바를 장악했다. 루트바는 요르단 수도 암만과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의 핵심구간이 지나가는 곳이다. ISIS는 지난 20일 시리아 국경검문소가 있는 알카임을 손에 넣은 데 이어 라와, 아나 등 안바르주의 다른 전략적 요충지를 잇따라 점령했다.
이에 따라 안바르 영토의 최소 70%가 ISIS 통제 하에 들어가게 됐다. 이라크 최대 주인 안바르는 바그다드 서쪽 끝에서 시작해 서쪽으로는 요르단, 북쪽으로는 시리아와 각각 국경을 각각 맞대고 있다. ISIS는 앞서 점령한 제2도시 모술과 안바르를 뒤에 놓고, 바그다드를 북쪽과 서쪽에서 옥죄고 있는 형국이다.
ISIS가 단 이틀 만에 안바르를 차지한 것은 이라크 정부군의 철군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CNN 방송에 따르면 이라크군은 22일 밤 사이 안바르 최대 수력발전소가 있는 하디타를 비롯해 일부 주둔지에서 철수했다. 앞서 이날 오후엔 정부군이 급하게 빠져나간 북부 요충지 탈아파르 공군기지도 ISIS의 손에 넘어갔다.
정부군 대변인 카심 아타 중장은 알카임, 라와, 아나에 있던 정부군은 부대 재배치 등 작전상의 이유로 철수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누리 알 말리키 정부가 사실상 안바르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CNN은 지적했다.
이처럼 이라크 정부군의 방치 속 ISIS가 이끄는 반군 세력이 시리아ㆍ요르단 접경지대를 차지하면서, 이라크 내 분쟁이 주변국으로 확산할 것이란 우려도 점차 현실화되는 형국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ISIS와의 교전이 요르단 같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퍼질 수 있다”면서 “(ISIS 소속) 반군 세력들은 이미 치안 공백이 발생한 시리아의 분쟁에 개입했으며, (그곳에서)무기와 자원을 축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이라크ㆍ시리아 접경지역에선 ISIS가 무기와 병력 등을 이동시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리아에서 넘어온 ISIS 소속 트럭 40대가 알카임 인근에서 발견됐으며, 라카 등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선 ISIS의 영향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시리아 반군 세력과의 연대와 교류를 통해 ISIS의 공세가 거세질 것으로 저널은 지적했다.
▶중동 딜레마에 빠진 오바마=이라크 사태에 ‘제한적 개입’을 선언한 오바마 대통령은 안팎에서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CNN이 21일 일부 공개한 인터뷰에서 이라크 정부군 내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 간 협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300명 규모의 군사 자문관들의 공동 작전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미국의 중동 지역 최우방인 이스라엘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사태 해결을 위해 이란과 협력 가능성을 내비친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2일 NBC 방송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오늘날 중동 지역에서 이란이 이끄는 급진 시아파 세력과 알카에다와 ISIS가 주도하는 급진 수니파 세력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적들끼리 싸우고 있을 땐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줘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이란이 핵무장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면서 “수백만명을 살상할 수 있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는 것이 최종적 목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라크 개입과 관련해선 “ISIS를 막기 위한 모든 행동을 취하는 한편, 이란이 레바논과 시리아를 장악한 것처럼 이라크를 지배하게 둬선 안 된다”며 이란과의 협력을 견제했다.
이런 가운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22일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 중동 달래기에 나섰다. 요르단과 이라크로 이어지는 중동 순방을 통해 중동 내 종파 분쟁으로 치닫는 이라크 사태 해법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날 관영 IRNA 통신을 통해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이라크 내정 개입에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이라크 정부와 국가ㆍ종교 지도자들이 현재 폭동 사태를 종식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에서도 이라크 문제 개입에 대한 역풍에 시달리고 있다.
공화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는 랜드 폴 상원의원(켄터키)은 22일 WSJ 기고문에서 ‘미군 개입은 미국의 국익과 일치하고, 군사ㆍ정치적 목적이 분명해야 하며, 국민과 의원들의 지지를 얻어야 가능하다’고 정립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캐스퍼 와인버거 전 국방장관의 ‘와인버거 독트린’을 들어 “미국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한 병력을 이라크에 보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 공습은 이라크 정부를 도와 ISIS에 맞서싸우는 이란을 도와주는 꼴”이라면서 “오바마 정부는 이미 시리아에서 알카에다와 ISIS를 간접적으로 지원한 적이 있다”고 꼬집었다.
또 그는 이날 CNN 정치대담 프로그램 ‘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에 출연, “나는 내 아들을 혼돈 속으로 보낼 생각이 없다”며 내전에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강승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