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심층 르포>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

문열고 자다 보니 절도사건 빈발…냉장고 없어 급식소서 끼니 해결 방에서만 생활 하단 일사병 걸려…비만 오면 곰팡이 와의 전쟁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동 쪽방촌 앞. 아직 여름은 중턱에 이르지도 못했건만 서 있기만 해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쪽방촌 인근 영등포역 파출소 앞에 앉아 있던 노숙인 5∼6명도 가슴팍까지 웃옷을 끌어올려 맨살을 드러냈다. 그래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지 주고받는 대화도 없었다.

오후 2시께, 영등포역 파출소에서 노숙팀장을 맡고 있는 정순태(52) 경위와 함께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쪽방촌 안으로 들어갔다. 길을 따라 걸을수록 거리에 나와 땀을 식히려는 주민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주민들은 하나 같이 “더워서 집에 있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모(64) 씨는 “여름에 선풍기를 틀어놔도 더워서 문을 열어놓고 잔다”고 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일찍 문을 열여놓고 생활하는 거라고 했다.

한 씨의 동의를 받아 그의 집을 찾았다.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 안쪽의 1평 남짓한 공간. 한 씨의 방은 찜질방처럼 후텁지근했다. 비좁은 바닥엔 양은냄비와 마트에서 쓰는 녹색바구니 등 각종 집기류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방엔 1명이 쪼그려 누울 공간만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얼마 전 서울시와 영등포구청의 도움으로 리모델링을 거쳤지만, 창 없는 방은 원천적으로 통풍이 불가능한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습기라도 차면 천장과 벽에 곰팡이가 검게 번지는 일이 다반사다. 얼마 안 있으면 장마가 올 것이다.

벽면에 매달려 다 낡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선풍기도 제 임무를 수행하기엔 힘겨워 보였다. 한 씨는 “문을 닫건 열건, 더위를 피할 수 없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는 목발을 짚고, 불편한 몸을 이끌며 다시 ‘시원한’ 골목으로 나섰다.

이처럼 쪽방촌 주민 대부분은 여름철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생활한다. 그러다 보니 절도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정순태 팀장은 “매일 2∼3시간 단위로 순찰을 나가고 있다”며 “그래도 통장을 도둑맞을까봐 걱정하는 주민들이 있어, 파출소 차원에서 통장을 맡아 보관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렇게 보관하고 있는 쪽방촌 주민들의 통장만 100개가 훌쩍 넘는다.

땀에 절은 몸을 씻는 일도 쪽방촌에선 쉽잖은 문제다. 간단히 씻을 수 있는 공용화장실이 군데군데 있긴 하지만, 화장실 하나당 8∼10가구가 함께 쓰고 있는 실정이다. 샤워를 하려면 비가 오고 눈이 와도 쪽방촌에서 70m 떨어진 공용샤워실로 가야만 한다.

그나마 1곳 있는 이 공용샤워실마저도 남녀 각각 한 사람씩 밖에 들어갈 수 없다. 541세대, 약 600명 정도의 주민이 다 씻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여름철에 쪽방촌 주민들이 자주 씻을 수 없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여건 때문이다.

여름엔 먹는 일도 곤혹스럽다. 주민 중 상당수는 집에 냉장고가 없다. 쪽방의 월세값은 한 달에 20만∼25만원. 이 안에 전기세와 수도세 등이 다 포함된 탓에, 일부 집주인은 냉장고도 함부로 들여놓지 못하게 막는다. 작은 냉장고 하나도 들여놓을 공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음식이 쉬 상하는 여름철, 집밥을 해먹는 풍경은 쪽방촌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배모(61) 씨는 “냉장고가 있어야 뭘 두고 먹든 말든 하는데, 없으니까 매번 요셉의원이나 사랑의 열매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이곳 주민들의 건강을 챙기고 있는 옹달샘 상담보호센터는 지난 16일부터 폭염 대비에 들어갔다.

권경윤(39) 팀장은 “근무자 1명과 직원 1명이 하루 3번 쪽방촌을 돌면서 주민들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쪽방촌에서는 열사병이나 일사병에 걸리는 환자보다 더운 방을 나와 뜨거운 햇볕 아래 오래 노출돼 화상을 입는 경우가 더 많다”고 했다.

“지난해랑 마찬가지로 올해도 얼린 생수랑 차가운 물수건을 드려야죠. 물수건으로 얼굴을 덮으면 조금이나마 열감(熱感)이 내려가거든요.”

얼굴의 열기를 머금어 후끈해진 물수건은 샤워를 못한 주민들의 몸에 물기를 축이는 소중한 임시방편으로 쓰인다고 한다.

쪽방촌을 빠져나오는 길. 구멍가게 주인 한 분이 얼굴에 흥건한 땀을 연신 손으로 훔쳐냈다. “날씨가 너무 더워요”라고 말을 건네자, 그는 내뱉듯이 말했다. “날씨가 덥긴 뭐가 덥나. 연탄값 안 들어가서 좋은 거지 뭐.” 쪽방촌에서 40년을 거주했다는 그는 “여름이라 딱 하나 좋은 점은, 이것저것 돈 들어갈 일 없다는 거야”라고 하면서 쓰게 웃었다.

쪽방촌에 무서운 여름이 오고 있다.

이지웅·박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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