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제이가 좋아하는 말은 ‘이번엔 발표할 내용이 없습니다’인데, 전 있습니다. 씁쓸하군요. 워싱턴에서 저와 가장 친한 친구에 관한 내용입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 도중 브리핑룸에 들어와 돌연 그의 사임 사실을 기자들 앞에서 발표했다.
지난 3년 4개월 동안 ‘오바마의 입’으로 활동하며 언론으로부터 백악관을 지켜내고 세계 여론에 대응해야 했던 카니 대변인은 이달 중순 혹은 후반께 자리에서 물러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제이는 가장 친한 친구의 하나로 판단력이 뛰어난 훌륭한 대변인이자 고문”이라며 그의 사임을 안타까워했다.
카니 대변인은 21년 경력의 베테랑 언론인 출신으로 1987년 마이애미헤럴드에 입사해 타임지 모스크바 지국에서 옛소련의 몰락을 보도했다. 1993년부터 백악관 출입기자로 일했고 타임지 워싱턴 지국장을 지냈다. 2008년 12월부터 조 바이든 부통령의 공보담당 업무를 맡다가 2011년 1월부터 대변인직을 수행했다.
신중한 대응으로 부적절한 성명을 내거나 백악관의 이미지에 흠집을 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간혹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는 기자들과 충돌하기도 했으며 한 언론인은 부시 행정부 시절보다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더 적다면서 불평하기도 했다. 야후 뉴스에 따르면 첫 브리핑 이후 지난해 6월까지 ‘모른다’는 형태의 대답이 1900여회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카니 대변인은 최근 20년 간 백악관 대변인들 중 장수한 대변인에 속한다. 수많은 언론과 다양한 사안들을 놓고 대응해야 하고 자신의 의견과 배치되더라도 ‘대통령의 입’이 되어야 하는 등 업무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이다.
백악관 대변인 중 가장 오래 직책을 수행한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1933~1945)부터 해리 트루먼 대통령때(1949~1950)까지 두 차례에 걸쳐 무려 13년 간 대변인을 지낸 스티븐 얼리다.
대통령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한 인물도 있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대변인을 지낸 제임스 브레이디는 1981년 레이건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으로 머리에 총을 맞는 중상을 입기도 했다. 계속 대변인직에 머물렀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까닭에 래리 스피크스와 말린 피츠워터가 부대변인으로 실질적인 대변인직을 수행했다.
백악관 역사상 최연소 대변인은 닉슨 대통령 시절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대변인을 지낸 론 지글러다. 대변인 지명 당시 29세에 불과했으며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곤혹을 치른 인물이다. 기자들을 위한 백악관 브리핑룸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디디 마이어스는 백악관의 첫 여성 대변인이었다. 1993년 지명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였고 역사상 두 번째로 젊었다. 백악관 공보실을 다룬 드라마 ‘웨스트윙’의 자문을 돕기도 했으며 등장인물 중 여성 대변인인 C.J. 크렉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한편, 카니 대변인 후임에는 조시 어니스트(39) 백악관 선임 부대변인이 승진 임명됐다.
어니스트 신임 대변인은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태생으로 2007년 3월 오바마 대선캠프에 들어가 최대 격전지(스윙스테이트)인 아이오와주를 담당하는 공보국장을 맡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새 대변인을 소개하면서 “당시 그는 젊은 보좌진을 도와 전화를 걸거나 문을 두드리느라 추가로 한두 시간을 더 일했다. 조시에게 하찮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의 이름(어니스트)을 옮겨 ‘성실한’ 사람이고 정직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백악관 부대변인으로 옮겨서는 카니 대변인을 대신해 정례 브리핑에 참석하거나자주 오바마 대통령의 국내외 출장을 수행하면서 전용기(에어포스 원) 내 브리핑을 담당해왔다.
카니 대변인은 어니스트 부대변인이 내달 초 오바마 대통령의 유럽 순방도 동행한다고 설명했다.
어니스트 부대변인은 백악관 기자단 내 평가도 좋고 언젠가 승진할 것으로 점쳐졌지만, 한때 젠 사키 현 국무부 대변인이 카니 대변인의 후임으로 물망에 오르기도했다.
사키 대변인은 백악관 공보부국장과 2012년 오바마 대선 캠프 대변인으로 일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