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프리마 이상준 대표 단순한 숙박시설아닌 ‘특급갤러리’ 로…3,000여점 작품 모아 대중들 품으로
켄싱턴제주호텔 박성경 부회장 중국 유명 작가들과 인맥 형성…호텔 로비마다 회화 · 조각작품 전시
이중섭의 ‘황소’를 40억에 산 C회장님이 있다. 황소는 C회장님의 작품일까? 여전히 이중섭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중섭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작품이다.
기업이 문화예술 경영의 일환, 혹은 오너의 사적 취향으로 아트 콜렉션을 보유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중견기업 회장님들 중에는 오랜시간 탁월한 안목을 단련해 온 잘 알려지지 않은 아트 콜렉터들이 많다. 한 작가는 “그 회장님 그림 보는 눈이 너무 탁월해서 내 그림 팔기가 무섭다”라고 말할 정도다.
아트 콜렉터가 아트 플리퍼(flipper 경매 등을 통해 단기 이익을 추구하는 미술품 투자자들)로 매도 돼 따가운 시선을 받는 한국사회에서 예술작품을 보유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수백억이 넘는 돈을 주고 예술작품을 손에 넣었더라도 ‘일시적 점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미술품은 결국 공공재라는 의미다.
공공재로써 미술품의 가치를 실현하는 한국의 슈퍼리치들이 있다. 특히 고급 호텔의 오너들은 호텔 로비나 객실, 세미나룸에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아예 호텔 자체를 갤러리화하기도 한다. 회장님 방이 아닌 공공의 장소에 그림을 걸거나 조각 작품을 둠으로써 대중과 함께 향유함은 물론 호텔의 품격과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다.
▶켄싱턴제주호텔ㆍ제주신라호텔… 제주를 대표하는 갤러리형 호텔=최근 제주도 중문관광단지에 문을 연 켄싱턴제주호텔은 박성경 이랜드그룹 부회장의 야심작이다.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 출신인 박회장이 갤러리 같은 럭셔리 호텔을 표방하며 호텔 로비 곳곳에 회화와 조각작품을 전시해놨다.
켄싱턴제주호텔에는 중국 도예가 주러겅(朱樂耕·62)의 대형 도자벽화 두 점이 시선을 압도한다. ‘만개한 생명’과 ‘하늘과 물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1600개의 도판으로 만들어진 가로 24m 세로 11m의 ‘만개한 생명’은 중국 최고국가행정기관인 국무원으로부터 ‘특별공헌예술가’라는 칭호를 받은 작가가 반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이다. 붉은 색 바탕에 크고 작은 구름이 붙은 도자 벽화 ‘하늘과 물의 이미지’도 가로 28.7m, 세로 9.4m로 웅장함을 뽐내고 있다.
일찌감치 중국 진출을 통해 의류 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켜온 박 부회장은 중국 유명 작가들과 인맥을 형성하고 다수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신라호텔은 호텔 관내에 500여점의 예술품을 보유하고 있다. 호텔신라의 이부진 대표는 고 이병철회장, 아버지 이건희 회장, 어머니 홍라희 리움 관장의 영향을 받아 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표는 호텔 리모델링을 직접 진두지휘하며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을 진열했다.
▶조선호텔ㆍ롯데호텔…유서있는 호텔에 묵직한 예술작품들=1914년에 지어진 웨스틴조선호텔에는 무게감 있는 작품들이 즐비하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헨리 무어의 브론즈 조각 작품 ‘Figure in a Shelter(1985년)’를 비롯해 김환기의 ‘메아리(1965년)’ 시리즈, 윤명로의 ‘바람부는 날(2009년)’ 등 회화 작품도 전시돼 있다. 특히 3층 호텔 피트니스 클럽 복도에는 매그넘 포토스의 최고령 회원이자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엘리엇 어윗(Elliott Erwitt)의 사진 3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호텔 복도에도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 작품을 걸어 놓은 세심함이 돋보인다.
롯데호텔 구관 엘리베이터 옆을 장식하고 있는 백태원의 초대형 나무 부조 작품 ‘장생도(1978)’는 그 스케일에서부터 보는 이를 압도한다. 날아가는 학의 위용이 강렬하면서도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1층 로비에 갤러리를 운영하는 롯데호텔은 한달에 한번씩 기획 전시를 열 정도로 예술품 전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호텔프리마, 미술을 만인의 것으로=청담동 호텔프리마의 인포메이션 데스크 뒷편에는 아라리오갤러리의 초창기 전속 작가 권오상(40)의 작품이 걸려 있다. 까르띠에, 샤넬 등 유명 잡지의 럭셔리 광고 이미지들을 오려 붙인 입체적인 꼴라주를 다시 사진으로 찍은 작품이다. 욕망에 중독된 현대인의 삶을 꼬집는 이 작품은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막역한 이상준 호텔프리마 대표이사 사장(58)이 들여왔다. 지난해에는 ‘제주의 화가’ 강요배의 대형 회화작품 ‘길 위의 하늘’도 학고재갤러리에서 구입해 로비에 걸었다.
이 대표는 특2급 호텔프리마를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닌 ‘특급 갤러리’로 만든 장본인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묻혀버린 한국 화가들의 그림을 사들여 전시를 하는가 하면, 한국 도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백자, 청자, 주병 전시회를 수시로 열기도 한다. 독일 도자명품 마이센(Meissen)의 앤틱 그릇들을 300여점이나 모아 레스토랑과 호텔 곳곳을 채워놨다. 최근에는 ‘독도는 조선땅’이라고 표기됐던 삼국접양지도와 조선팔도도를 일본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호텔 로비에 걸었다. 특히 삼국접양지도는 전시가 끝난 후 경희대 혜정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10여년전부터 아트경영을 도입한 이 대표는 3000여점의 미술품을 모아 소장품 위주로 전시하고 대중과 함께 나누고 있다. 이 대표는 호텔 경영을 시작하며 수년간 갈고 닦은 ‘안목’으로 일본 옥션 등을 통해 미술품을 사들이고 있다. 1930년대 일본으로 넘어갔던 조선백자 달항아리를 100만달러 이상 주고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사와 전시회를 열어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호텔프리마가 종로구 북창동에 새로 문을 연 비즈니스 호텔 아로파(Aropa)에도 객실마다 원로 공예가 곽계정의 작품들을 전시했다. 호텔을 갤러리화 하고 미술을 대중과 함께 공유하는 이상준 대표의 아트경영은 슈퍼리치의 예술작품 수집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사회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글ㆍ사진=김아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