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대한민국의 행복수명을 발표하여 화제가 되었다. 평균수명과 건강수명은 들어본 바 있지만 행복수명은 좀 낯선 느낌이 든다. 행복수명이란 일생 중 즐겁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기간으로 행복수명이 길어지면 삶의 질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한다.
20-60대 경제활동인구 1552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행복수명은 74.9세로 나타났다. 건강, 경제, 대인관계, 사회참여를 종합적으로 반영하였다고 하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평균수명이 83.1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행복수명을 뺀 8년은 이른 바 행복하게 살지 못한 기간인 ‘불행수명’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행복수명이 외국보다 긴지 짧은지는 알 길이 없다. 이번 조사가 국내 최초의 시도인데다가 비교할 외국의 자료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노후준비, 노후 인간관계, 노후건강 등의 지표값이 취약한 점을 감안해볼 때 불행수명의 대부분이 노년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수년전 모 일간지의 조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4개국 공동조사에서 한국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주관적 행복감이 점차 하락하고 60대 이후에는 더욱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비교대상국이었던 덴마크, 브라질, 일본이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행복감이 증가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 세계 80개국을 대상으로 한 영국 워웍대 연구팀의 조사에서도 행복지수는 전반적으로 노년기에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외국은 노년기에 접어들면 행복감이 증가하는데 한국은 왜 그 반대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주된 원인은 질병과 빈곤이다. 노년기에 접어들면 아프고 쇠약해진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신체활력이 저하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노인 10명 중 9명이 한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3개 이상의 복합질환을 앓고 있는 노인들도 절반에 이른다. 치매 노인인구는 10년마다 두 배씩 증가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평생의료비 중 절반을 65세 이후에 지출하게 된다. 질병 때문에 노인 3명 중 1명 이상이 자살충동을 느낀다고까지 응답했다.
경제적 어려움도 행복수명을 갉아먹는 요인이다. 공적소득보장제도인 국민연금의 역사가 짧고 급여수준도 낮은데다 수급대상자도 한정되어 있어 아직도 많은 노인들이 사각지대에 있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기초노령연금제도가 있지만 급여액이나 대상자가 제한되어 있다. 일을 해서 생계를 해결하려고 해도 청년실업도 심각한 상황에서 취업하기가 만만치 않다. 한 마디로 현재의 노인세대는 빈곤탈출이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빈곤율은 50%에 근접해 있으며 수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빈곤문제는 건강문제와 더불어 노인들이 겪는 가장 어려운 문제로,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평균수명만 가지고 따지면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다. 평균수명은 OECD 평균치를 넘어섰고 미국보다 더 길다. 100세가 넘는 장수노인이 금년 들어 처음으로 3000명 대를 돌파했다. 100세 진입을 앞둔 90대 노인들도 15만 명이 넘는다. ‘100세 시대’가 본격적인 개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행복수명이 짧은 100세 시대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뿐이다. 건강하지 못한 노후, 빈곤한 노후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불행만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8년이란 긴 불행수명을 맞이해야 하는 노인들에게 헬조선은 이미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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