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잘 된다 싶으면 “월세 올려라”압박
별도 기술 필요없어 “내가 경영…나가라”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 불구 속수무책
소송 걸면 시간 걸리고 권리금 회수 난망
본사서도 딱히 묘안 없어 건물주 눈치만
#. 서울에서 1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해오던 최모(55) 씨는 운영하던 점포를 송두리채 빼앗기게 생겼다. 건물주가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며 사업자 지위를 넘겨줄 것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최 씨의 계약기간은 내년초까지다. 건물주는 향후 운영권을 넘겨준 자신의 매장에서 월급 200만원의 편의점 관리자로 일해달라고 굴욕적인 요구까지 했다. 번화가에 입지한 덕에 월 1500만원 이상씩 매출을 내며 700만~800만원 가량의 수익을 가져온 매장이었다. 건물주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최 씨의 수익은 4분의 1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마땅한 생계유지수단이 없는 최 씨는 건물주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무용지물 상가임대차 보호법=지난해 소상공인들의 권리 증진을 위해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지만, 전국 3만1000개 점포에 달하는 편의점 점주들의 수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소상공인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지난 2001년 마련된 법안이다. 상가를 임대하고 5년동안 임대인(건물주)이 계약 조항을 변경하거나 해지를 요구할 경우, 임차인(소상공인)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임대기간 5년이 지난 이후에도 임차인이 권리금을 지급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을 추가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서 여전히 점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개정된 내용에 따라, 영업기간 5년 이상의 점주들은 건물주의 강압으로 부당하게 사업장에서 내쫓긴 경우에는 소송을 통해 권리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소송을 거치는 만큼 권리금을 요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증빙자료가 필요하다. 소송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건물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더라도 바로 권리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먹고살기도 힘든 많은 점주들은 ‘아들에게 물려주겠다. 나가달라’, ‘장사가 잘되니 월세를 올려달라’는 무리한 요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실정이다.
이에 한 편의점주는 “통칭 ‘손맛’이 필요한 식당이나 로스팅 기술이 중요한 카페의 경우와 다르게 편의점은 별도의 기술없이 누구나 경영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건물주의 횡포가 심하다”며 “많은 편의점주들이 건물주의 갑질에 더욱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건물주는 슈퍼갑(甲), 본사도 함부로 못해=본사에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쉽지 않다. 건물주는 편의점 업계에서 ‘슈퍼 갑(甲)’으로 통용되기 때문이다.
여러 매장을 경영하고 있는 본사 영업사원들은 직영점이 위치한 건물의 건물주들에게 잘보이기 위해 일종의 ‘접대’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기적으로 찾아가 인사를 하고, 심하게는 선물을 전달하거나 접대도 할 정도다.
한 본사 관계자는 “편의점 프렌차이즈 본사도 건물주 눈치를 보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며 “건물주가 횡포를 부린다고 해도, 점주와 건물주의 관계에서 프렌차이즈 본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다.
법과 본사가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점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편의점 사업권을 들고 다른 건물로 이주하는 것 뿐이다. 지난 2012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시한 모범거래기준안에 따라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은 250m 이내(도로거리 기준) 출점이 원칙적으로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법안, 구체적인 개선 시급=이에 관련 법규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본사에 의한 24시간 영업과 끼워팔기 요구는 어느정도 개선이 됐지만, 건물주에 의한 횡포는 여전히 거듭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내년께 계약이 만기되는 한 편의점주는 “지난 2012년께 친하게 지내던 편의점 점주가 건물주의 횡포로 매몰차게 내쫓기는 경우를 봤다”며 “이후 4년이 지나고 내가 피해자가 되다니, 아직 이런 부분이 개선 안되는게 억울하다”고 털어놨다.
서울시청 소상공인과 관계자도 “임대차보호법의 범위 밖에서 편의점주들이 부당한 상황에 놓였을 경우에는 법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했다.
김성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