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만에 기업총수 청문회 출석

의원들 이재용 부회장에 질문공세

“총수들 대가성 없었다” 답변

이번엔 ‘살아있는 권력’ 정조준

외신들 “사상 최악의 악몽 직면”

재계 총수들이 28년만에 국회 청문회장에서 섰다.

박근혜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가 6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가운데 재계 총수 9명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재계 총수들이 한꺼번에 국회에 불려나온 것은 1988년 일해재단 비리 관련 5공 청문회 이후 28년만이고, 9명의 총수가 증인으로 선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관련기사 3·4면

재계 총수들은 이미 검찰이 지난달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기업이 피해자‘란 점을 명시한 상황인데도 또 다시 전국에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에 서는 것에 대해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였다. 청문회 출석을 위해 국회에 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일부 총수들은 기자들의 질문에 별다른 말없이 국회에 들어가거나, “성실히 답하겠다”는 원론적인 짤막한 답변만 했다. 하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자격으로 출석한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최순실 스캔들에 기업들이 얽힌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억울하다, (청문회)안에서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기업이 피해자’라는 주장과 관련, “(청문회가) 기업들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청문회장에 들어온 재계총수들은 각자 이름이 적힌 증인석을 찾아 자리에 앉았다. 자리 배치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구본무 LG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의 순이었다. 청문회가 시작되면서 총수들은 담담하게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이재용 부회장은 “무거운 마음으로 여기에 나왔다. 앞으로 절대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다시 연루되지 않도록 철저히 하겠다”고 답했다.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의 대가성 여부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에 재계 총수들은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대가성은 없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20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기업은 피해자”라고 명시한 바 있다. 검찰은 재계의 재단 출연은 “기업활동 전반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출연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질의 초반 의원들은 이재용 부회장을 상대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질의했다.

한편, AFP통신, 블룸버그 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도 이날 청문회를 실시간으로 전하면서 비중있게 보도했다. AFP는 이날 속보로 공개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한국의 대기업 총수들이 최악의 악몽에 직면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AFP는 “이번 청문회에 나서는 재계 총수 명단은 한국 비즈니스 엘리트의 인명록과 같다”며 “이처럼 재계 총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1988년 5공 청문회 이후 처음”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도 한국의 그룹 총수들이 정치 스캔들로 인해 줄줄이 청문회에 선다면서 국회의원들이 그룹 총수들에게 정부 관료들과 연결고리가 있는지 추궁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청문회를 지켜보는 한 재계 관계자는 “연말로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하거나 인사를 해야 하는 데, 중요한 사안을 미루고 기업 총수들이 국회 증언대에 섰다는 게 안타깝다”며 “외신들에 사실상 생중계 되는 상황에서 국가 신인도가 떨어져 기업활동에 지장을 줄까 걱정이 된다”고 우려했다.

신수정·홍석희·이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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